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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의 길목이다. 집밖으로 조금만 나가면 무르익은 가을이 코끝 깊숙이 파고든다. 토실토실 영근 것들이 어서 거둬달라고 눈짓, 손짓으로 우리를 부르는 풍요로운 정취가 쏠쏠하다.

문득 길섶에 웅크리고 있는 낙엽 몇 잎 보다가 멀리 떠나온 ‘새 이웃’을 떠올려본다. 길거리에 나서면 심심찮게 만나는 우리와 다른 ‘우리나라’ 사람들, 이제는 우리도 그들에게 따뜻한 이불이 되어 줄 가슴 하나 지녀야할 터인데...

피부색이 다른 ‘우리나라’ 사람들 외에도 우리 옆에는 연변 등 중국이나 일본에서 꿈과 희망을 찾아 우리 이웃에 둥지를 틀려는 사람들이 날을 더하여 늘고 있다. 피부색이 다른 만큼 생각과 문화도 같이 않음은 두 말을 요치 않는다.

문화라 했거니와 그것은 어떤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나눠 향유하는 이른바, 예술, 신념, 관습, 언어, 기술, 가치 등을 망라한 생활양식이 아니던가? 자라면서 자연스레 배워나가는 문화, 그것은 오랜 시간의 숙성과 습관의 품팔이로 개인에게 체득된 후 다시 다음 세대에게 계승되곤 하는 것인데, 갑자기 결혼, 취업 등을 통해 타문화권에 접어들 경우 문화충돌에 의한 혼란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충격적일 것이다.

문화를 공유한다는 것은 그 문화권이 지니고 있는 언어는 물론 그 사회의 다양한 상징과 관습 그리고 전통에 익숙해진 연후에 가능한 것일진대... 이제 우리는 오래 동안 매달았던 단일민족의 기폭을 내리고 다민족 시대의 기치를 공식으로 선언했는바 그에 걸맞게 다문화, 다사고의 탄력성을 인식하면서 가슴의 깊이와 사고의 높이를 세계로 향하자는 목소리는 그래서 우렁차다.

열린 사고 열린 가슴, 그것을 마다할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마는 그래도 아직 구태의 단단한 각질은 여전히 굳기만하다. 동면을 마친 뱀이 허물을 벗음으로써 새봄의 새 삶을 준비하듯이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새 술’에는 구태의 편견이나 그릇된 인식이 담겨질 여유가 없다.

왜냐하면 계곡물이 아무리 머물고자 하여도 위에서 밀고 내려오는 도도한 힘에 의해 여지없이 밀려날 수밖에 없듯이 다문화, 다민족의 ‘세계 시대’는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기 때문이다. 비근한 예를 들자면 전남의 경우만 해도 결혼을 통한 외국의 이주여성은 해를 달리하여 늘어나고 있다.

2003년에 1,953명, 2005년엔 2,342명으로 수직 상승하여 이제는 전남 인구의 0.12%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향후 지속될 전망이다. 한미 FTA 등 강대국의 개방 압력에 의하든 아니면 우리 스스로 문호를 열든 간에 세계시장은 언젠가는 열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어떻게 공생 공영할 것인가의 긴 안목과 현명한 지혜에 따름 대안과 준비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실로 다가와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다문화 시대에 이주 여성의 가을 소회를 생각해 보자. 품어 따뜻할 가슴 있다면 여간 쓸쓸하진 않을 터인데...

지금 사회 각층에서는 이주여성의 증가에 따르는 제반 문제점에 대해 그것의 치유 방법 모색은 물론 사전 예방 등 크고 작은 교육이나 강연 및 정책을 강구하느라 고심이다. 전라남도의 경우 여성회관을 중심으로 이른바 ‘소통교육’(언어, 문화 등)이라는, 안착을 위한 일차적 교육에서부터 영어 강사나 요리 강사 등으로 능력을 발휘케 하여 이 땅에서 자신들의 존재 의의를 확인시킴은 물론 수익을 창출케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행하여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와 같이 여러 지자체의 갖은 노력들은 참으로 요긴하거니와 더욱 바람직한 것은 이주여성과 가까이 생활하고 있는 보통 이웃들의 열린 가슴일 것이다. 그 어떤 프로그램이나 정책보다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소통’되려는 이웃들의 마음이야말로 따뜻한 월동의 첩경이 아니겠는가?

고국의 부모를 떠나 물도 설고 사람도 낯선 이역의 고독이 아무런들 없겠는가마는, 그래도 마다않고 품어 안은 가슴 가슴이 따뜻한 형제와 부모를 대신해 준다면 어찌 꼭 진수성찬 아니라고 배고프다 타박하겠는가? 하인즈워드의 빛나는 모습 저 너머에 그 어머니와 그가 쏟아낸 폭포수 같은 눈물을 읽을 줄 아는 우리들 아닌가...

최한선(전남도립대 교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