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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군 홈피와 소쇄원 주차장의 안내를 보면 “소쇄원은 양산보가 은사인 정암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능주로 유배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출세에의 뜻을 버리고 자연속에서 숨어 살기 위하여 꾸민 별서정원이다.”라고 소개되어 있다.

또한 “광풍각(光風閣)은 '비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으로 “제월당(霽月堂)은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으로 소개하여 자연속에 은둔하는 선비의 정원으로 묘사하고 있다.

원래 광풍제월은 북송시대의 문인 황정견이 유학자 주돈이의 사람됨을 두고 표현한 말로서 후일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의 학풍을 따르는 선비들의 최고의 덕목이 되었다.

광풍은 ‘뙤약볕 아래에서 시원하게 부는 바람’이라는 뜻으로 어려운 자구를 해석함에 막힘이 없는 도학에 충실한 자를 의미한다. 제월은 스스로 내세우지 않아도 비갠 뒤의 달처럼 맑은 기품이 절로 드러남을 의미한다.

이처럼 도학과 절의를 지닌 인물을 처사라 하였고, 많은 선비들은 처사의 길을 따르고자 하였다. 송시열은 소쇄원 담벽에 ‘소쇄처사 양공지려’의 글을 남겼고, 율곡으로부터 ‘청수부용 광풍제월’이라 칭송을 받은 하서 김인후는 광풍각과 제월당의 현판 글씨를 남겨, 소쇄원은 성리학을 배우는 선비들에게 유가의 최고 덕목인 처사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담양군 홈피나 소쇄원 주차장 안내에는 소쇄원에 대해 은둔과 음풍농월만 소개되어 있다. 송시열이 소쇄처사 양공지려라 글을 남긴 뜻이 무엇인지, 왜 현판 이름이 광풍각과 제월당인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남명 조식은 성리대전에서 노재 허형의 “출사(出仕)하면 나라를 위해 크게 하는 일이 있어야 하고 처사(處士)이면 스스로를 지킬 줄 알아야한다. 대장부는 마땅히 이와 같이 하여야 한다. 나아가 벼슬을 하는 일이 없고 물러나 은거하면서 지키는 것도 없으면 뜻을 세우고 학문을 한들 무엇 하겠느냐?”라는 글을 접하고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는 남명으로 하여금 엄정한 출처관의 자세를 갖게 만들었고 평생 한번도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는데, 이는 출처관에 관한 특별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서도 남명은 끊임없이 상소를 올렸으며, 그때마다 조정을 뒤흔들어 놓았다.

동시에 남명은 ‘왕도정치를 지향하는 인물로 우순이나 부열과 같은 천하에 드러나 임금과 신하가 될 수 있고, 뜻을 얻지 못하면 안회와 같이 누항에서 일생을 보낼 수밖에 없으며, 이는 시대 상황이 결정하는 것’이라 하여 제자들로 하여금 출처를 분명히 하도록 주문했다.

처사란 제왕을 초월하여 그를 비판하고 본위를 지키고자 항상 대원칙을 밝히고자 하는 이를 말한다. 학문에 정진하며 후학을 가르치고 권력이 없는 처사는 끊임없이 목숨에 위협을 받지만 마땅히 소임을 멈추지 않는다. 은둔하여 바른말을 하지 않으면 처사라 말하지 않는 것이다.

교수신문이 선정한 2008년 올해의 사자성어는 광풍제월이다. 배움이 있으면 세상에 나아가 뜻을 펴야 하나(출사), 대선과 총선의 참패로 갈 곳 잃은 민심에 목숨을 걸고 바른말을 하도록 광풍제월(처사)이 선정되었지 않나 싶다. 이러한 광풍제월의 기풍이 촛불민심으로 재현되었음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소쇄원에 광풍각과 제월당, 소쇄처사의 의미는 간 데 없고, 방문객에게 은둔과 음풍농월만 안내되고 있어 유감이다.

김상집<참여자치21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