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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이건 역사란 지나간 정치요, 정치는 현재의 역사이다. 한데 우리역사는 광기(狂氣)에 휩싸인 정치인들의 도전에서 탄생했다.

이렇다보니 길거리에서 어느 한 부인의 옷매무시나 쪽진 머리만 보아도 그 부인이 노론(老論) 또는 소론(少論)에 속한 집 마님인지의 여부를 알 수 있을 만큼 행색(行色)에까지 당색(黨色)을 드러내고 살았던 우리 조상들이었다.

이를테면 저고리의 깃과 섶이 둥글고 치맛주름이 굵고 주름수가 적으면 노론이요, 깃과 섶이 뾰족하고 모났으면 치맛주름이 잘고 많으면 소론이다.

또 머리쪽이 느슨하여 뒤통수가 가려져 있으면 노론 부인이요, 바싹 추켜 뒤통수가 노출되게끔 쪽을 올려 찌었으면 소론 부인이다. 사색당파에 따라 경치구경하는 동작도 그렇게 판이하게 달랐던 것 같다.

산천을 두루 돌아보며 활개치고 탄성을 지르며 구경하는 것은 남인(南人)이요, 산수를 자세히 보지 않고 냇물에 발을 담그고 노는 것은 소론이며, 몸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품위를 지키며 장중하게 오가면 틀림없이 노론이라고 <이순론(二旬錄)>이라는 문헌에 적혀 있다.

남인인 장현광의 손녀 장씨는 그의 아들이 서인(西人)에 붙자 그 즉시로 아들집을 떠나 같은 남인인 사위집에 옮겨가 살다 그곳에서 죽고 있다.

파당이란 정치에 대한 주견의 차이에서 일어난 것인 것을, 우리 한국인의 억센 파당심은 파당을 이렇게 생활화하고 행동화하며 살았던 것이다.

네 편이냐 내 편이냐 하는 양분논리로 내 편이 아니면 적이요, 적과는 학문이나 교혼(交婚)이나 복색(服色)이나 교제(交際)나 거주지역이나 그 모든 것을 같이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TV에서 아프리카 야생공원을 시청하다 보면 잡아먹고 또 잡아먹히는 사자와 사슴 떼가 가까운 거리에서 평화롭게 공존공생하고 있는 이상한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 양분논리로 따지면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이 두 짐승은 존망(存亡)을 가르는 적대관계랄 수 있다.

하지만 사슴 떼는 사나흘만에 한 두 마리씩만 사자에게 희생을 당해 배만 불려놓으면 이렇게 공존을 할 수 있고, 사자와 공존함으로써 하이에나의 대군 같은 사슴을 잡아먹으려는 여타의 많은 맹수들로부터 보호를 받고 종족보존을 한다.

이렇게 대립의 측면이 있는가 하면 결합의 측면도 있어 강자와 약자가 공존공생하고 있는 것이다. 여(與)건 야(野)건 최근 추석 민심을 잃고 당세를 강화시켜 보려고 노력하는 계절이다.

네 편 내 편 좋아하던 유구한 전통 때문인지…파(派),…맥(脈)하는 줄기며…계(系),…연(緣)하는 연줄 등이 가로세로 맥락 되어 매일처럼 신문에 그 줄기와 연줄이 노출되고 있다. 그만큼 정치인에겐 계보나 계파가 생명줄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과거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씨는 그 목줄을 거머쥐고 지역할거주의의 단맛을 빨면서 ‘소왕국’ 왕 노릇을 했다. 돈과 공천권이 힘의 원천이었다. 이로 인해 곳곳에서 악취가 풍기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도 한국인의 전통적 파당심리가 살아 숨쉬고 있다. 한나라당 친이 친박계에 이어 친 이상득, 친 이재오, 친 이방호계. 이들은 사안에 따라 소리가 각양각색이다.

홍 원내대표의 퇴진 요구는 친 이재오계가 주도했다고 한다. 요즘엔 잠재적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인사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계파 형성의 움직임도 있다고 한다.

민주당도 다르지 않다. 크게는 열우계와 민주계가 있고, 친노, 친정, 친손계 등이 힘을 키우고 있다. 줄을 잘 서야 살아남는다고 보기 때문에 이런 구태 정치가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다소의 대립의 측면이 있더라도 의연하게 그것을 초월, 여망과 대의를 지향한 결합의 측면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기러기는 반목하는 사이일지라도 철 따라 옮겨가게 될 때면 한 갈대를 나란히 물고 난다 하지 않던가.

고운석 <시인.남구발전협의회장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