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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조식은 한 마디로 칼을 찬 유학자다. '경'을 내적 수양의 방법으로 중시하는 한편, 사회적 실천을 위한 가장 절실한 것으로 '의'를 삼아, 선생이 항상 차고 다니는 칼에다 새긴 글이 '내명자경 외단자의(內明者敬外斷者義)’인 데서 알 수 있듯이 내적 수양을 통한 사회적 실천의 결연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장자』에 나오는 '남명(南冥)'을 자신의 호로 삼고 또『장자』에 나오는 '시거이룡현 연묵이뢰성(尸居而龍見淵默而雷聲)'이라는 말을 따다가 '뇌룡정(雷龍亭)'으로 강학하는 장소 이름을 삼는다든지, 임종 시 ‘후세 사람들이 나를 처사라 하면 옳지만 만일 유자로 지목한다면 실상이 아니다.’(남명학연구논총)라는 기록을 보면 ‘도학적 유자’라기보다는 ‘도학적 경세가’를 주창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제왕학은 일반적인 유자의 학문과는 다르다.’, ‘경세에는 율력, 형법, 천문, 지리, 군려, 관직에 대해 정통해야 한다.’는 남명의 발언에서도 알 수 있다.

남명은 성리학이 전래된 이후 그 이론적 탐구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어 꽃피울 무렵에 생존하였던 16세기 실천성리학의 대가였다. 15세기 후반 영남사림의 종장이 되었던 밀양의 김종직과 김종직의 삼대 제자로 거론되는 현풍의 김굉필, 함양의 정여창, 청도의 김일손은 모두 남명이 존경했던 인물이었다. 김굉필의 사적을 적은 책인 ?경현록(景賢錄)?을 읽고 정리한 독후감, 김굉필이 갈무리 해두었던 병풍에 쓴 발문, 두류산을 유람하면서 정여창을 추모한 글에 잘 드러나 있다.

남명의 문하생은 처사로 지내기도 하고, 정계에 나가기도 하고, 의병장이 되기도 했다. 남명과 마찬가지로 출사하지 않고 처사로 일관했던 사람(최영경, 이제신, 하항), 남명에게서 배운 학문을 정치를 통해 펴고자 했던 사람(정인홍, 김우옹, 정구, 오건),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남명에게서 배운 병법을 십분 활용하며 의병장이 되었던 사람(곽재우, 김면, 조종도) 등이 그것이다.

남명의 제자들은 초야에 물러나 있었으나 당대의 현실을 ‘급구(急求)’로 인식하며 벽립천인(壁立千?)의 기상으로 비판하는가 하면, 실천의지를 드러내며 민본주의를 역설하기도 하였다. 정인홍이 차자(箚子)나 상소에서 밝힌 글에서, ‘사람이 있고 난 뒤 왕위를 지킬 수 있으며, 민심이 안정된 뒤에야 나라가 편안해진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백성을 보호하는 일을 그만두고 무엇을 먼저 하겠는가?’ 등은 남명의 민본주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서경'을 인용하며 ‘민암(民?)’을 말한 것은 남명의 '민암부' 그대로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장 먼저 창의기병한 것도 남명문도에 의해서였다. 실록에 기록된 의병장만 하여도 57명이나 되었고, 의병에 가담한 문인들은 130여 명이 넘는다. 이는 남명의 ‘경의’를 바탕으로 한 행동철학이 그의 문도들에 의해 내재적으로 발전되어 이룩한 하나의 쾌거였다. 남명문도들은 향촌의 강력한 재정적 기반을 가지고, 남명학파라는 학문적 결합에서 향촌사족과의 긴밀한 연합 및 그 학파 출신의 재조관인들과의 협조 하에 의병을 효율적으로 운영하여 마침내 국난극복의 초석이 되었다.

남명은 가난하여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늘 처절하게 자기수양과 실천을 하였다. 소위 참여정부에서 전성시대를 보낸 시민운동에 자성을 촉구하는 거울이라 할 만하다.

김상집<참여자치 21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