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프린트하기

얼마 전 TV에서 우리지역의 농부들이 힘들여 가꾼 무와 배추를 걷우지 아니하고 트랙터로 갈아 엎어버리는 장면을 보면서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다.

필자 역시 농촌에서 태어나 성장했기 때문에 농사일에 쏟는 농부들의 정성과 애착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서는 누구 못지 않게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음의 아픔이 더욱 컷 는지도 모른다.

또한 어제는 집에서 김장을 하기 위해 무와 배추 등 김장거리를 구입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배추와 무값이 4만원에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김치 냉장고에 가득 넣어두고 2년 이상을 먹을 수 있다는 김장 채소 값이 4만원에도 미치지 않는 현실이 곧 요즘 우리 농촌의 참 모습인 셈이다.

그런데도 요즘 언론에서는 농협의 운영실태에 대한 비판적 기사들이 적지 않게 보도되고 있다. 농민이 어려울 때. 그 어려움을 가장 가까이에서 돌보고 도와주어야 할 곳이 농협일 텐데, 트랙터 옆에 앉아 있는 수심 가득한 농부의 모습과 함께 각종 부조리로 몸살을 앓는 농협의 고발기사가 언론의 다른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데에서 우리는 우리사회의 이중성과 모순을 다시 한 번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농협은 문자 그대로 농민들로 구성된 협동조직이며, 협동조합의 근본 목적은 구성원 상호간의 상부상조에 있다. 즉 농협은 농민의, 농민에 의한, 농민을 위한 조직이 되어야 하며, 따라서 농협의 참 목적이 지나친 이윤추구에 집중되어져서도 안 되는 것이다.

협동조합의 조직원리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민주성의 원칙으로 이는 그 구성원인 조합원의 의사에 의해 선출된 대표에 의해 조합이 운영되는 것을 의미하며, 경영진은 조합원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 어느 때부터인가 농협은 우리에게 비리의 온상인양 비쳐지고 있다.

경향 각지를 막론하고 조합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는 금품 살포 등의 비리가 어김없이 나타나고, 이는 곧 고소, 고발로 이어져서 줄줄이 수사의 대상이 되는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 것인가.

보도에 의하면 중앙회장의 봉급과 판공비는 재벌기업의 회장에 버금가는 수준이라고 하며, 단위조합의 조합장 또한 연봉과 판공비가 수 천만 원대를 상회하는가하면 이른바 실무책임자들인 전무 또는 상무들 또한 억대의 연봉을 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단위 조합장을 비롯한 간부들에게 지급된 법인카드의 무절제한 사용으로 엄청난 예산이 부정 집행되고 있다고 한다. 원래 법인카드 지급의 목적은 예산집행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인데도, 오히려 이를 통하여 비리가 증대되고 있다는 것은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면 농협에서 이처럼 비리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첫째, 중앙회장 및 단위조합장을 선출하는데 문제점이 있다고 하겠다. 선거 때마다 뿌려지는 엄청난 금액의 선거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비리가 자행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둘째, 감사의 역할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고 있는 데에서도 문제가 비롯되고 있다. 감사 또한 조합원이 직접 선출하는데 선출직 감사가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 데에서 부정과 비리가 더욱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상급기관과 정부당국의 감독기능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고 있는 데에서 문제가 비롯되고 있다. 예컨대 금융 감독원이나 감사원의 감사가 수시로 이루어진다면 금융사고 등 협동조직의 일탈행위는 상당부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제 농협은 농민을 위한 조직으로 재빨리 탈바꿈되어야 한다. 무, 배추를 갈아 엎는 농민들의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데 협동조직인 농협이 앞장서야 하며, 이제 귀족화된 임원들이 농민위에 군림하며 그들만을 위한조직으로 존속되는 시대는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할 것이다.

오수열 교수<조선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