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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있으면 설날이다. 각기 다른 장소의 생활 전선에서 지내던 피붙이들이 원근을 마다않고 선산 아래나 부모 형제 곁으로 모이는 기쁨이 있는 날이다. 웃어른을 찾아뵙고 세배를 드림은 물론 정성스럽게 제수를 갖추어 제사나 차례를 지내거나 마음의 기도를 올려 조상을 추모하고 성묘를 가기도 한다.

제사를 지내는 방법은 지역이나 문중에 따라 각양각색이어서 남의 제사상에 ‘감 놔라 곶감 놔라’ 하면 안 된다는 말이 생겨나기도 하였음은 잘 아는 사실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형식과 내용이 있게 마련인데 그 둘의 상충 때문에 늘 갈등이 빚어졌는 바 조선시대 남인과 노론의 예송 논쟁은 그 대표적 예이다. 제사나 차례의 경우 ‘붉은 것은 동쪽에 흰 것은 서쪽에 진설한다’는 홍동백서(紅東白西) 등, 제수를 진설하는 방법에 대한 규정은 형식의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제사를 지낼 때 제일 먼저 향을 피워 혼을 부르고, 그것이 혼을 부르는데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다시 술을 따르며, 그러고도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지방을 써 붙이기도 하였다. 어찌 보면 모두가 형식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제사의 내용이어야 한다.

형식이야 냉수를 떠놓고 기도를 드리든, 제수를 두루 갖춰 문중의 풍습대로 진설하든 간에 그 내용은 정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날 수업 시간에 학 학생이 질문을 해왔다. 제사를 지낼 때 사진이 있으면 지방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있는데 맞느냐는 것이었다. 이 또한 형식의 문제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진은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림자는 제사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유교적 사유로는 제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시동’이라 부른 어린아이를 제사의 대상으로 지목하여 고인의 신위 자리에 앉혀놓고 제사를 모시거나, 풀이나 나무로 형상을 만들어 신위 자리에 두기도 하였다. 어쨌든 구체적인 대상을 두고 제사를 지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로 볼 때 사진을 두더라도 지방을 써서 제수를 잡수신다고 생각하는 분을 분명하게 지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언컨대 옛 사람의 사유가 그렇다는 것이다. 또한 제사에 대한 형식과 절차는 무궁하고 다변하다. 이 또한 쓰는 게 법이다 할 정도로 부지기수임은 모두 잘 알 것이다. 제사 종류도 안방 제사니 바깥 제사니 하는 것을 비롯, 시제 또는 시향이니 하는 등 제사를 모실 대상 선정에 대하여도 말이 참 많다.

하지만 제사를 드리는 대상을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 등으로 함을 마치 오랜 전통인 것으로 알고들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제사 대상의 선정은「경국대전」에 따르면 벼슬아치의 품계(요즘 말로 급수)에 따라 달랐음을 알려주는데 갑오경장 이후에 너 나할 것 없이 사대 봉사(고조부모까지 안방에서 제사를 모시는 것)를 하는 겉치레가 생겨났으니 어찌 보면 허례허식의 대표적 예라고 하겠다.

나는 이 자리에서 사대 봉사를 하지 말자는 의도의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거니와 제사를 모시는 대상은 부모 이외는 후손의 능력에 맡긴다는 것이다. 제사를 모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정성이다.

그래서 공자는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과 같다는 말씀을 하였던 것이리라. 제사는 참여가 중요하다는 이 말씀으로 볼 때 제사는 제수의 종류나 진설의 방법 보다는 함께 모여 정성을 바치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알게 한다.

고인이 돌아가신 날 피붙이들이 한 데 모여 생전의 고인을 추모하고 서로 상면하여 정화(情話)를 나누며 기쁨은 나누고 슬픔은 줄이는 행위가 제사의 본령이 아니겠는가? 그런 맥락에서 제사와 시질 곧 시 쓰는 일은 많이 닮은 것 같다. 시 창작에 있어서 형식과 내용은 늘 논쟁거리였다.

그 형식과 내용의 논쟁에 있어 ‘얻은 곳은 이데올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이다’라는 회월 박영희 선생의 카프 탈퇴 선언은 유명한 예이다. 그 가운데 성동격서(聲東擊西)라는 말이 있다. 문자 그대로 소리는 동쪽에서 나지만 때리는 곳은 서쪽이라는 말이다. 독자에게 감동을 주기 위한 시 창작 요령을 말한 것이거니와 조상께 정성을 바치는 방법에 있어 홍동백서든 조율시리(棗栗枾梨)든 다소 따지는 일을 너무 허물하지 말 일이다

최한선 <전남도립대 교수·한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