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프린트하기

근대 민주주의의 확립에 크게 기여한 몽테스키외의 3권 분립은 권력이 한곳에 집중되면 그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게 되고, 그것은 곧 인권침해로 이어지게 된다는 전제에 근거하고 있으며 따라서 권력은 분산되어야 하며 그를 통해 상호 견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독립이후 정부 수렵과정에서 이러한 원리를 수용하였고 이러한 대원칙은 몇 차례에 걸친 정변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유지되어 왔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3권 분립에 의한 국가권력 간의 견제와 균형은 헌법규정에 의한 명문적 표현에 그쳐서는 아니 되고 권력의 운용과정에서 명실상부하게 구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 국회 운용과정에서 행정부의 국회 경시가 도(度)를 넘는 것으로 보여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물론 국가의 영역이 확대되고, 특히 복지에 대한 수요가 증대되면서 행정부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럴수록 이처럼 공룡화 되고 있는 행정부 권력에 대한 견제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필자는 며칠전 TV를 통해 방영된 ‘용산참사’의 원인 규명을 위한 국회의 대 정부질의에서 행정부 각료들의 답변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란 적이 있다. 그곳에서는 용산 참사를 경찰의 무리한 진압작전에서 빚어진 참극으로 규정하려고 애쓰는 민노당 소속 여성의원의 질의에 대해 행정안전부 차관이 답변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가관(可觀)이자 목불인견(目不忍見)이었다.

즉, 의원의 질의에 대해 그 답변자는 마치 그 질의를 알아듣지 못하는 태도로 눈만 멀뚱거리며 발언대에 그대로 서있는 것이 아닌가. 의원이 “그럴려면 뭐하러 여기에 나왔느냐”고 소리를 질러도 그저 못들은 척 서 있으니 답답한 측은 오히려 의원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침내 “차라리 들어가라”는 의원의 공허한 메아리만이 의사당을 맴돌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회를 보던 여당 소속의 국회 부의장이 그러한 모습에 경고를 보낸 것이었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이쯤 되면 의회주의는 망가질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상황이 여기에 이르면 여야를 떠나 원내대표들이 회의를 열어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할 터인데도 여당 원내대표는 야당의원의 발목을 잡기 위한 ‘국회폭력방지특별법’ 제정만 강조하고 있으니 국회의 권위를 스스로 짓밟고 있는 셈이다.

사실 집행권한이 없는 국회가 어마어마한 행정부 권력을 견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의회가 그 권위를 유지해 나가는 데는 의원들이 여야를 떠나 국회의 권위를 유지하고 행정부를 견제하는데 공동노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의원들이 그들은 여야 정당의 소속원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라는 자부심과 그 명예를 지켜나가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의원들은 ‘국민의 대표’라는 자부심 보다는 소속 정당의 일원이라는 소속감과 거기에 복종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지나치게 강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여기에는 거대 정당의 공천이 아니면 다음 선거에서 승리가 어렵다는 현실적 절박감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참된 민주주의의 발전은 어떠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보다도 민도(民度), 즉 민주시민의식의 제고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으며 우리 국회도 의원들이 스스로 그들의 권위를 지키려 노력할 때만이 참다운 3권 분립 정신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오수열 교수<조선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