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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을 넘기자 야트막한 야산은 물론 들녘 여기저기에서 봄 살의 웃음소리가 점점 커짐을 볼 수 있어 새삼 봄이 가까이 와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제 머잖아 연두의 향연이 우리들 굳은 살 배긴 마음을 달래주리라 생각하니 한동안 동토 같은 마음이 어지간히 풀리는 듯 입가에 미소가 쟁긴다.

며칠 전 배낭 하나 짊어지고 나선 무등산 등반길, 도심의 안락으로 길들여진 육신은 불과 십여 분도 안 되어 산과는 화합이 어렵다는 듯 거칠게 반항을 해댄다. 쉬엄쉬엄 달래가며 토끼등을 지나고 중머릿재에 도착한 일행은 가져간 도시락을 꺼내들고 이리저리 주저앉을 만한 장소를 물색했다. 잠시 후 우리는 그만 깜짝 놀랐다. 그 이유는 온갖 음식물 쓰레기로 변해 있는 중머릿재의 고달픔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과일 껍질에 먹다 남은 음식물 찌꺼기와 휴지 조각 등 참 가관이었다. 그 곳에 주저앉아서는 도저히 음식을 목으로 넘길 수 없을 정도였다.

물론 이런 추한 모습이 꼭 우리 광주시민의 잘못이라고는 단언하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주말이면 전국 곳곳에서 여러 산악인들이 대형 버스를 이용하여 물밀 듯이 무등산을 찾아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악인들은 대체로 음식물 관리를 철저히 하는 습관을 지닌 사람들이기 때문에 쓰레기 투척의 책임에서 우리 광주시민이 꼭 자유로울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백 번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또 하나의 아쉬움은 여전하다. 다름 아닌 특정 지역에 대하여 출입을 통제한다는 선을 어기고 들어가는 일부 등산객이라든가, 출입 통제를 알리는 표지판의 잘못된 표기법 등이 영판 눈에 거슬린다. 서석대에 오르면 출입금지를 출입금지(出入禁止)라 쓰지 않고 출입금지(出入禁地)라 해놓은 것은 그 좋은 예이다.

물론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입석대에서 서석대 방향으로 가다보면 승천암이라는 안내 표지판이 눈에 든다. 그럴싸한 전설을 읽은 뒤 승천암이 어디일까 하고 사방을 둘러보게 됨은 인지상정일진대 아무리 찾아봐도 눈에 잘 뵈지 않는다. 왜 그럴까? 승천암을 통행로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유적이라고 안내를 하지 말든지, 아니면 안내를 했으면 밟고 다니지 못하도록 길을 우회시키는 등 다른 조처를 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얼마 전에도 무등산에 대한 이야기를 두 차례나 한 적이 있지만 돌출된 나무뿌리를 지근지근 밟고 걸어야 하는 우리의 심사는 늘상 아리기 마련이다. 일정 지역 휴식년제를 통하여 여러 가지 공사를 하는 등 산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눈에 띈 점은 참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지만 나무를 보호하고 문화재를 아끼는 데에 보다 더 우선적인 관심과 배려가 요구된다. 등산로에 너무 치중한 공사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어떻게 달래야 좋을지….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서석대 위로 오르는 행위이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입석대 부근에는 넘어져 있는 주상절리대가 여러 개 있다. 풍파우습을 견디지 못해 넘어진 것도 있지만 등산객이 타고 넘고 오르다 보니 넘어지게 된 경우도 상당하리라 생각하니 마음 아프다. 이렇게 아픈 마음은 서석대 전망대 밑에 이르면 절정에 달한다. 많은 사람들이 금지선을 넘어 바위 위로 올라 사진 촬영 등 훼손 행위를 삼가지 않고 있다. 공익 요원과 관리 요원은 저 만치 떨어져 엉뚱한 곳에 서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다는 말이다. 차제에 입석대와 서석대 부근에 넘어져 있는 바위들을 일으켜 세우는 일을 제의해 본다. 물론 그런 일은 문화재와 관련한 일이기 때문에 면밀한 검토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한다. 문화재 그것은 우리보다 먼저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요 역사의 징표이다. 함부로 지려밟고 뭉개서는 안 될 소중한 유산들, 우리가 그 옆을 지날 때는 엄숙하고 경외의 마음으로 우리 곁에 있어 감사하다는 생각을 해야 되지 않을지…. 문화재라는 현상은 개념이 있어야 설명이 기능하다. 우리 시민의 문화재에 대한 개념은 무엇인지, 알고 싶다.

최한선 <전남도립대 교수. 문화재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