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프린트하기

법 위에 사람 없고 법 아래 사람 없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법에 복종하기를 요구할 때 우리는 그의 동의를 구하지 않는다.

법에 대한 복종은 권리로서 요구되는 것이지 특혜로서 부탁되는 것은 아니다. 한데, 무전유죄-유전무죄라는 말처럼 소도 웃다 죽을 재판이 가끔 있다. 이렇다보니 고무줄 재판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같은 물건을 놓고 세 사람이 길이를 쟀다. A는 300m라고 했다. 그러자 B는 “제대로 재야지” 라며 1000m라고 반박했다. 맨 마지막에 나선 C는 “이런저런 사정을 고려해서 재야 할 것 아니냐. 100m밖에 안돼”라고 했다. 3배 이상 늘어나더니 다시 10분의 1 이하로 줄어드는 이런 일을 두고 사람들은 흔히 ‘고무줄 잣대’라고 부른다.

다른 곳보다 ‘엄정하다’는 법의 세계에서도 이런 일이 생긴 것을 어떻게 봐야할까. 17대 총선을 앞두고 당내 경선 과정에서 학력과 경력을 허위 기재한 혐의(선거법 위반)로 기소된 열린우리당 D의원은 2005년 3월 10일 항소심에서 벌금 80만 원을 선고받았다.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을 받고 이것이 그대로 확정되면 의원직을 잃는다. 검찰은 벌금 300만 원을 구형했지만 당시 1심인 전주지법 군산지원은 구형량의 3배가 넘는 1000만 원을 선고했다.

이때 재판부는 “검찰의 수사가 미진하다”며 검찰을 타박하기도 했다. 그런데 2심인 광주고법은 특수 대학을 나온 판사였던지, 아니면 1심인 군산 지원판사가 하급 대학을 나온 판사였던지 고법은 1심 선고형량의 10분에 1에도 못미치는 벌금 80만 원을 선고했다.

양 형의 차이만큼 판결 요지도 크게 달랐다. 1심 재판부는 “탈법적 사안이 중대하고 공명선거의 이념을 훼손한 점이 인정된다”고 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학력과 경력을 허위 기재했지만 발견 즉시 수정한 점과 초선인데다 부정부패에 물들지 않고 성실히 의정활동을 수행한 점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두 재판부가 인정한 혐의가 일치하고 적용한 법률도 같은데 결론만 달랐던 것. 어떻게 이런 상이한 결론이 나올 수 있는지 궁금했다. 이 경우를 보면서 역시 당내 경선 과정에서 학력을 허위 기재했다가 당시 의원직을 잃고 징역 1년 형을 살았던 이상락 전 열린우리당의원과의 형평성 문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하도록’ 보장돼 있어 판결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 없다. 하지만 양 형이 어느정도는 비슷해야 국민이 납득할 것이다. 최근 광주에서도 국회의원·단체장이 잇단 무죄·직위 유지형 판결로, 검찰이 무리한 수사냐, 법원이 지나친 관용이냐를 놓고 여러 말들이 분분하다. 사기와 위증혐의로 징역 3년을 구형받은 조형래 곡성군수는 지난 10일 열린 선고공판에서 벌금 1000만 원을 선고 받았다.

지난해 18대 총선을 앞두고 재산 신고과정에서 채무를 누락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기소된 김재균(광주 북을) 의원은 검찰이 벌금 3000만 원을 구형했지만 1심과 2심에서 벌금 90만 원을 선고받았다. 강운태(광주 남구) 의원도 지난해 총선을 앞둔 2월 광주의 한 식당에서 500만 원이 든 돈봉투를 선거운동원에게 전달한 혐의로 검찰이 징역 1년을 구형했지만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거액의 국고 보조금을 부당하게 지급한 혐의로 기소된 신정훈 나주시장은 검찰이 징역 5년을 구형했지만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배임죄의 단서조항인 ‘의도적 행위’가 인정되지 않고, 허위 또는 부정한 방법으로 보조금을 타내려 한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인정하기 힘들다는 것이 무죄 취지였다. 검찰은 엉터리고 법관은 잘한 판결인지 의문이지만, 약자들에게도 그리 판결을 해 주었으면 한다.

고운석 <시인·남발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