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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잠들어도 밤새 불빛들이 살아 숨쉬는 대학병원 빌딩을 바라보면 명멸하는 생명에 대해 깊은 사색에 빠지곤 한다. 큰아들이 태어나던 날 밤은 참으로 급하고 당황스럽고 속수무책의 연속이었다.

아내에게 진통이 오자 아내가 평소부터 다니던 I산부인과엘 갔다. 마침 그날이 토요일 저녁무렵이라 담당의사는 건물 윗층에 있는 사택으로 올라가 버리고 간호원 한 사람만 있었다.

간호원을 붙들고 사정 끝에 의사를 불러냈지만 즐거운 토요일 오후를 방해하느냐는 귀찮은 표정으로 구구한 변명만 늘어놓았다. 여지껏 정상이었던 산모의 자궁이 어쩌고, 자기네 병원에 피가 어쩌고 하며 사택으로 올라가 버렸다.

당황해 하며 가까운 K병원으로 갔지만 담당의사는 오후 일찍 간호원들과 탁구장에 갔다고 병원 사무장이 귀띔해 주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었다. 사람의 목숨을 책임지는 의사와 간호원이 토요일이니 일요일이니 해서 자리를 비우는 것은 양심과 책임의식의 실종에서 연유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황망해 하며 H대학 병원에 도착하였다. 급한 상황 속에서도 어둠 속에 빛나는 붉은 불빛의 커다란 글자는 `영안실'이었다. 섬찟하였다.

입원 수속 절차를 마치고 아내는 곧 진찰실로 그리고 다시 진통실로 옮겨졌다. 그 사이 진통간격은 더 빨라지고 아내는 더욱 고통스러워 하였다. 그러고 보니 같은 방에는 아내보다 먼저 들어온 산모가 있었다. 이를테면 애 낳는 동기생인 셈이다.

둘이서 질러대는 소리 중에 아내의 목소리를 가려내며 진통실 밖에서 장모님과 나는 가슴 조이고 있었다. 갈수록 신음과 비명이 크게 들려와 참을 수 없어 간호원의 제지와 병원내규를 무시하고 진통실에 뛰어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 고통스러워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고통을 같이 할 수 없는 처지가 안타까웠다.

자정이 넘고 다음날 새벽 두 세시가 지나도록 아내는 분만실로 옮겨지지 않았다. 여지껏 발버둥치며 고통스러워 하였지만 아직 애 나올 준비가 안됐다는 것이다. 같이 있던 산모는 분만실에 옮겨진 지 오래다. 네시가 조금 넘었을까. 아내도 분만실로 옮겨졌다.

안도 반 탄식 반 한숨을 내쉬며 창문을 열었다. 밖은 아직도 칠흑같은 어둠에 짓눌려 있고, 4월 초순의 밤공기는 제법 싸늘했다. 머릿속이 맑아지자 아내 생각을 하였다. 아들이건 딸이건 아무거나 낳고 산모가 건강하기를 마음 속으로 빌었다.

여섯시가 지나도록 아내는 소식이 없다. 점점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쯤 아내는 뜨거운 물에 데친 콩나물처럼 기진해 있을텐데 걱정이 되었다. 다른 진통실 산모들은 쌍둥이를 낳았느니 딸을 낳았느니 한다.

동녘에 희부움한 날빛이 움터 올 무렵, 아이의 울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조금 지나서 간호원이 핏덩이를 보여주었다. 아들이었다. 산모는 건강하단다. 새 식구의 탄생을 실감하지 못하면서, 까닭모를 눈물이 주루루 흘러내렸다. 지난해 봄, 산으로 간 아우생각 때문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날이 밝고 어둠 속에 묻혔던 도시들이 되살아났다.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살아 움직이는 도시지만 밤 사이에 사람이 죽고 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 신생아실에는 갓 태어난 새로운 생명들이 세상에 태어난 의미도 모르고 새근새근 잠자고 있다.

마치 영안실로 내려간 목숨들이 신생아실에 마지막 큰 숨을 가다듬어 후- 하고 생명을 불어넣어 준 것처럼 생각되는 것은 왜일까. 한쪽에서는 태어나고 한쪽에서는 떠나가는 법칙이 예사롭지 않았다. 누군가 사람으로서는 감히 알 수 없는 어떤 큰 힘에 의해 움직여지는 듯 싶었다.

사실 아우의 죽음과 함께 아들의 목숨이 잉태되어 마음 속으로는 아우의 목숨이 아들에게 이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아들이 태어나던 날 밤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이 세상에 오는 길도 쉽지 않지만, 세상을 떠나는 길도 쉽지 않다는 것을. 거기에는 반드시 인내하기 힘든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고, 그 고통은 생명의 가치와 생명에 대한 존엄성 그리고 사랑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특히 짐승들은 태어난 지 서너 해가 되면 새끼를 낳고, 나무는 열매를 맺지만 사람은 최소한 20년은 걸려야 한다. 그리고 짐승은 여러 마리 새끼를 한꺼번에 낳지만 사람은 하나를 낳으면서도 유별난 산고를 치르니 말이다. 인연을 끊는 일도 그렇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들을 두고두고 아프게 한다. 새삼 인연의 줄이 얼마나 질긴지 알 수 있다.

아들은 지금 대학교엘 다닌다. 친구들도 사귀고 세상이라는 것을 배워 가고 있다. 때로는 비정함을, 때로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배우리라. 아들이 태어나던 날 아침, 아들의 얼굴을 처음으로 빤히 들여다보면서 고달픈 세상 뭣하러 왔는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삶이라는 것이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잖는가.

창 밖은 어둠이다. 이 밤은 또 누가 오고 가는 것일까.

▲강경호<시인, 문학평론가, 계간《시와사람》 발행인 00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