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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버이날이 지나갔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어버이날의 의미는 너무도 많이 퇴색해 버린 느낌이 든다 . 몇 년 전 만해도 우리 사회의 가정은 효(孝)의 사상이 짙게 배어 있어 동방의 예의지국이란 별칭을 받기도 하였고 외국인들은 한국 가정을 많이 부러워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옛날 고종황제의 밀사를 지냈던 헐버트(Homer B. Hulbert)는 이 세상에서 관습적인 노인복지가 가장 완벽하게 된 국가는 조선이라 했고, 알렌(H,H, Allen) 선교사는 노인과 망인(亡人) 사이가 단절되지 않고 연결되어 이 세상에서 죽는 것이 가장 두렵지 않는 즐거운 노인 천국이 조선이라 칭찬하기도 하였다.

또 미국의 공사를 지낸 샌즈(William Franklin Sands)라는 사람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나의 노년을 위해 조선 땅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 이토록 반세기 이전만 해도 어버이를 공경하고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어디를 가나 융숭한 대접을 받았던 사회가 바로 우리의 사회였다.

그러나 요즘 우리사회는 어떻게 변했는가? 최근 힘없고 쇠약해진 부모를 짐스러워하고, 심지어는 내다 버리는 현대판 고려장이 벌어지는 살풍경이 일어나기도 한다.

잠시 거짓말 같은 사실을 하나 이야기해보자. 70세가 넘은 어느 노인 한분이 아내와 사별하고 시골에서 홀로 살고 있는데 서울에 사는 아들이 아버지를 모시고 올라왔다. 그러나 그 노인은 서울 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체, 얼마동안을 지내는 동안 아들 집안에 서열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며느리가 집안의 왕이고, 두 번째는 손자 손녀이며, 셋째가 아들, 넷째가 식모, 다섯째가 강아지, 그리고 자기가 여섯 번째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외출을 하고 들어온 며느리는 식모에게 애들 아빠는 언제 들어왔느냐를 묻고 다음은 강아지 밥은 주었느냐를 묻지만 시아버지께는 점심을 챙겨 드렸느냐고 묻는 법이 없었다 한다.

얼마동안을 지내보았으나 너무도 어이가 없어 다시 시골로 내려가면서 아들에게 짤막한 편지 한 줄을 썼는데 “3호야 잘 있거라, 6호는 간다”라는 편지를 남겼다 한다. 참으로 웃지 못한 이야기이다. 이런 세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슬픔이 앞을 가로막고 만다.

성경 십계명을 보면 5 번째 계명에 부모를 공경하라, 생명의 뿌리를 사랑하라는 말이 있다. 이 5번째의 계명은 존속의 한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부모가 돌아가시게 되면 5 번째 계명은 사라지고 회복될 수 없는 계명이다.

“돈 많이 벌어 효도해야지”, “형편이 나아지면 잘해 들어야지”하는 생각으로 미루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부모님은 우리 곁을 떠나시게 되는데 그 때는 후회도 자책도 모두가 허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효도는 현재형이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 자살증가율이 1위이고 그 중에서도 노인들의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통계가 나오고 있다.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국가의 복지정책에 문제가 있지만 자식들이 부모를 돌보지 않는 이유로도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평생의 마음을 자식에게 바치고도 생활고에 시달리는 독거노인이 급증하는 것도 이와같은 이유로 보아야한다. 경제력을 잃은 부모를 짐으로 여기거나 아예 인연을 끊으려는 현실의 세태는 우리를 더욱더 슬프게 하고 있다. 효는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에만 가능하다 더 늦기 전에 더 깊은 회한의 눈물을 흘리기 전에 아들딸들에게 송강 정철선생의 훈민가(訓民歌)를 들려주고 싶다.

‘어버이 살아 실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지난 후면 애달프다 어이하리. 평생의 고쳐 못한 일은 이뿐인가 하노라~’

서길웅 <서강전문학교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