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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나무가 없다면 이 세상은 어떠할까?. 한 마디로 사막 같으리라. 이따금 사막 가운데에 도시가 있는 나라의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면서 참으로 삭막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더불어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고 했던 우리나라의 산하가 너무도 아름답고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처럼 나무는 아름다운 풍경이 되어준다.

그 아름다운 풍경이 인간에게 주는 정서적 풍요로움은 인간의 마음을 살찌우고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인류의 역사에 나무가 없었다면 과연 인류의 삶과 역사는 어떠했을까. 나무는 단순한 풍경 그 이상으로 인류에게 많은 것을 끊임없이 내어주었던 없어서는 안될 그런 존재였다.

지금도 식목일이 있다. 오늘날 식목일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하룻날의 휴일이 되어버렸다. 그 의미가 퇴색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60년대에는 모두가 삽이나 괭이를 들고 산으로 가 나무를 심는 날이었다. 때로 마을 길가에 나라꽃인 무궁화를 심었다.

지금은 우리의 토종 무궁화는 어쩌다 눈에 띄는 정도이고 남의 나라 품종이거나 개량종인 무궁화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어 어떤 의식있는 사람은 외래 수종을 파내고 우리 꽃인 토종 무궁화를 심자는 의견을 내놓기도 하였다. 어찌했든지간에 오늘날 우리는 나무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어졌다. 그러나 갈수록 나무의 소중함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인 것은 확실하다.

내 아우는 특별히 나무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모든 것을 팽개치고 한동안 서울 사당동에서 분재원을 하는 모대학 교수에게 3년여 동안 분재에 대해 공부하여 장차 나무박사가 되겠다고 작정을 하였다. 그래서 나를 만나면 늘 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나무에 관한 전문서적이 늘 그의 주위에서 맴돌았다. 가끔씩 고향에 내려오면 분재 소재가 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산으로 쏘다녔다. 그래서 그가 산야에서 채집한 나무들은 집안에 가득하게 가져다 놓았다. 어느 바닷가 폐가에서 석류나무를 세 그루나 옮겨오기도 하고 수십 년 된 소사나무 분재를 선산에서 가져와 나무꼴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아우는 무차별하게 야생의 나무들을 파오는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에게 우리 산에 우리의 정서가 깃든 나무들을 식재하도록 말씀드리기도 하여 우리 산은 인근에서도 가장 푸른 산이 되었다. 지금도 우리 산은 밤나무 동산이 되어 가을이면 누구든지 밤을 줍기 위해 몰려든다.

또한 아우는 향나무를 생산하기 위해 고향집 공터에 무균상태의 황토흙을 구해 묘판을 만들고 1년생 가지를 채취하여 향나무가지 끝에 황토흙을 구슬만하게 달아 향나무를 키웠다. 향나무는 쉽게 뿌리를 내리지 않는다. 2~3년씩 키워야 겨우 작은 뿌리를 내린다.

그만큼 향나무 한 그루 얻는 일은 다른 나무들과는 몇 배의 공력이 필요하다. 아우는 향나무 묘목을 얻기 위해 해마다 수만본의 향나무 가지를 잘라내어 그 끝에 황토흙을 달았다. 이렇게 키워 5~6년이 지나야 한 그루의 향나무 묘목을 생산할 수 있으니 향나무가 다른 나무들과 다르게 아름다운 향을 내는 나무가 아니겠는가.

아우는 향나무 뿐만 아니라 철쭉과 소사나무, 느릅나무 등 분재의 소재가 될 수 있는 것은 모두 600여 평에 이르는 밭에서 키웠다.

그러나 그 나무 때문에 아우는 이 세상을 마감하고 말았다. 분재 동호인들이 많은 무안군 해제면에 출장 가서 분재동호인들에게 분재술을 전하기 위해 십수 일씩 혼자서 생활을 하다가 객사하였다. 집안에는 그가 남겨놓은 수많은 분재와 소재들이 나뒹굴었다. 봄이 되면 철쭉 소재가 있는 마을 뒤 웃성골에는 철쭉꽃이 핏빛으로 난만하였다. 아버지는 해마다 피어나는 그 꽃들에 가슴이 무너져 분재를 하는 아우의 선배에게 몽땅 줘버렸다.

서울에 살던 나는 부모님이 안 잊혀 광주로 내려오고 그 후 부모님을 광주 근교인 화순에서 모시고 살게 되었다. 이사 올 때 집안에 있던 모과나무, 석류나무, 향나무 그리고 아우의 정성이 깃든 분재들을 모두 새로 장만한 우리 집에 옮겨 심었다. 그런데 봄이 되자 향나무가 시들시들하더니 말라가기 시작했다. 결국 향나무가 죽고 몇 해 지나 모과나무까지 죽어버렸다.

이제 우리 집엔 아우가 남긴 석류나무 세 그루와 소사분재 등 몇 그루의 나무가 남아있다. 그 중 다행으로 석류나무는 이제 우리 집안에 풍요로운 가을을 맞게 해주고 있다. 해마다 가지가 휘어지게 많은 석류를 선물하고 있다. 그것으로 술을 담기도 하지만 설탕에 재워 그 진국을 겨울철 아이들에게 먹여 감기를 예방하고 체할 때 먹이면 체한 것이 금세 내려가 우리 집 상비약이 되었다.

나는 아우의 손때 묻은 나무들을 쓰다듬는 버릇이 생겼다. 모두가 잠든 밤이면 늦게까지 책을 보거나 원고를 쓰다가 겨울 추위 속에서 밤을 지키는 석류나무를 아우 손목 잡듯 어루만지면 마음이 편해지고 정신이 맑아지기도 하는 것이다.

앞에서 밝힌 것처럼 나무는 단순한 풍경만이 아니다. 특히 나무와의 특별한 인연이 있는 나에게 나무는 나와 같이 숨을 쉬고 대화를 나누고 함께 동행하는 정신이기도 한 것이다.

강경호<시인, 문학평론가, 계간《시와사람》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