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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참으로 인류의 범죄와 어리석음과 반작용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다보니 역사는 불행의 서술이라고 한다.

수많은 시민과 학생이 목숨을 잃은 80년 5?18민주화 운동도, 89년 5?3동의대 사태 때 순경 7명의 순국도, 6명이나 고귀한 목숨을 잃은 서울 재개발지구 참사도 역사에 불행한 서술로 기록 될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 역사에 가슴 따뜻한 서술도 있다. 조선의 철거대책에 관한 서술을 살펴보면 ‘중종실록’의 사관(史官)은 연산군이 “사직북동에서 흥인문(興仁門 : 동대문)까지 인가를 모두 철거하여 표를 세웠다.” 라면서 민가 철거를 폭정의 증거로 내세웠다.

연산군은 실제로 재위 9년 (1503)11월 민가 철거를 명령했다. 그러나 그 실상은 정적들의 주장과는 사뭇 달랐다. 우선 철거대상은 궁궐 담에서 백 척(尺)이내에 있는 불법주택들과 선왕의 후궁들이 사는 자수궁, 수성궁 인근 민가들이었다.

비록 불법주택이었지만 연산군은 먼저 병조, 공조, 한성부의 당상관(堂上官)을 보내 철거의 당위성을 설득했다. 각각 문무 정3품 통정대부와 절충장군 이상의 품계인 당상관은 최고위 관료들이었다.

당상관들이 국법을 거론하면서 철거를 위협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지금 관료들이 본으로 삼아야 할 일들을 했다.

첫째, 보상금을 지급했다. 병조판서 강귀손은 연산군의 명에 따라 큰 집(大家)은 무명 50필, 중간 집(中家)은 30필, 작은 집(小家)은 15필, 아주 작은 집(小小家)은 10필씩을 주었다.

둘째, 새로 집을 지을 수 있는 대토(代土)를 마련해 주었다. 셋째, 연산군은 겨울임을 감안해 “집을 비운 백성들이 편하게 거주할 곳 ‘안접처’ 을 마련해 아뢰어라” 고 명했다. 이 명에 따라 도성 안의 ‘경저’나 빈집이 겨울나는 장소로 제공되었다. 경저란 지방의 경저리(京邸吏)가 머물던 지방관아의 서울 출장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거에 대한 신중론이 계속일자 봄까지 철거를 연기했다. 이를 보면 지금도 연산군의 따뜻한 가슴을 따르지 못하고 있는데, 도덕도 인정도 없는 무지한 폭군으로 서술한 것은 정적들이 반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서술이었던 것이다.

세조도 재위 8년 (1462) 1월 창덕궁 후원을 확장하면서 철거 대상인 73채의 인가에 식량을 주는 한편 3년 동안 세금을 면제해주고 한성부에 그들이 원하는 빈 땅을 내주게 했다. 세조는 건축자재까지 지급하려 했으나 신하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조선에서 철거는 합리적인 보상 대책 후에야 이루어졌다.

세입자가 지불한 권리금도 인정하지 않는 시행사는 웃는 반면, 우는 세입자와 공권력이 충돌하는 비극은 벌어지지 않았다. 한데, 민주국가요 국민소득 2만불 시대라고 하는 이 시대에 서울 용산 재개발지구에서 6명이나 고귀한 목숨을 잃은 대참사가 일어났다.

이명박 정부의 용산 철거민 폭력살상 진압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요구서’도 제출되고 있다. 경찰의 진압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도심에서 화염병과 시너 액화석유가스통을 동원해 격렬하게 시위를 벌인 농성자들에게도 일정한 책임은 있다.

하지만 연산군이나 세조처럼 따뜻한 가슴을 보여 주었더라면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함에도 지방까지 최근엔 보성군의 개발 사업비 ‘나눠 먹기식 배정’이 구린내를 풍기고 있다.

지방의원들이 요청한 공사는 ‘꼬리표’가 붙어 특정업체에 발주되는데, 개발에는 크든 작든 이권개입이 따라 경찰이 수사를 한다고 한다. 불행한 서술이 또 남겠다.

고운석<시인.남구발전협의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