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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은 늙게 태어나 젊게 성장한다. 그것이 인생의 희극이다. 육체는 젊게 태어나 늙게 성장한다. 그것이 인생의 비극이다. 한데 <리타나이>라는 슈베르트의 슬프고도 장엄한 가곡(歌曲)이 이를 말한다.

고향을 떠나 못 돌아오고 유명을 달리한 영혼을 초혼(招魂)할 때 독일 아가씨들이 부르는 민속합창곡이기도 한다. 프레이저의 《골든 보우》에 보면 비단 독일뿐 아니라 영혼을 불러 장사를 지내는 초혼장의 습속이 여러 문화권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선조들은 외적의 침입으로 전장에 나가게 되면 그 전날 밤에 등을 바늘로 쪼아 ‘충(忠)’이니 ‘용(勇)’이니 하는 글씨를 자자(刺字)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쪼을 때 등에서 솟아나는 피를 저고리에 묻혀 고이 간직한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으면 그 피 묻은 저고리로 허공을 헤매고 있을 남편의 넋을 초혼하여 무덤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넋이나마 가족 가까이 되돌아갈 수 있다는 초혼장의 풍습 때문에 옛 병사들은 용감히 싸울 수 있었을 것이다. 싱그러운 호국의 법통이 아닐 수 없다.

경남 하동군 옥종면 삼강 마을에 가면 ‘치마무덤’이 있다. 연산군의 스승인 청백리 조지서(趙之瑞)가 연산군의 횡포를 맞대어 말리고 지탄하였기로 귀찮게 여긴 폭군이 육시(六屍)를 내어 한강에 던져버리도록 했다.

그리하여 이를 안 부인 정씨(鄭氏)가 한강에 들어가 그 흘러내리는 피를 치마에 받아두었다가 훗날 그 치마로 한 많은 남편의 넋을 초혼, 장례를 치렀기에 얻은 이름이다. 입었던 옷이나 갓, 신발로 무덤을 만드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고려 말의 판서 김주(金澍)는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는데 압록강변에서 이씨 조선이 개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종에게 조복과 신을 벗어주면서 부인이 죽으면 합장하라고 시키고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의리를 지켰다. 유물이 없으면 고인이 쓴 시나 필적, 손 때 묻은 책을 묻었고, 또 사육신이 성삼문(成三問)처럼 신주(神主)를 오지그릇에 담아 묻기도 했다.

임진왜란 때 전사한 충장 이대원(李大源)은 유물이 없자 그가 써서 남긴 친필의 시로 초혼을 하여 시총(詩塚)을 만들고 있다. 병자호란 때 많은 한국인이 납치되어 중국 심양 땅의 노예시장에서 매매되었었다. 돈이 있는 사람은 그 곳까지 가서 데리고 왔지만 돈이 없는 사람은 웃옷을 벗어주며 고향집에 가져다주어 넋이라도 묻게 해달라고 애원했다는데 눈물겹기만 하다.

이렇게 이역만리에서 입었던 옷이라도 보내와 영혼만이라도 혈육 가까이 와 있게 했는데, 한 핏줄, 한 땅덩이 안 인데도 생사까지 모르는 영혼들이 얼마나 많이 분단 선상에서 방황하고 있습인가. 1984년 9월 29일 한국 신문문화의 선각자요, 민족지 《조선일보》를 중흥시켜놓고 6⦁25전쟁 때 납치당한 방은모 선생의 생신 백주기를 맞아 유물을 묻는 초혼장이 열렸었다.

<리타나이>선율을 타고 비극의 씨앗이 울렸던 것이다. 한데 6⦁25 사변 59주년을 앞두고 최근 전쟁 당시 전사했던 장교와 병사 2명이 유해로나마 가족의 품에 안기게 됐다. 국방부 유해발굴단은 지난 5일 “6⦁25전쟁 때 전사한 고희경 중위와 김상희 일병의 유해를 발굴하고 신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육사 9기생인 고중위는 인식표 (군번15975)와 철제 계급장 등이 함께 발굴됐다. 하지만 군은 아직까지 직계가족을 찾지 못한 상태다. 김상희 일병은 “유해에서 추출한 유전자를 통해 아들 김공준(62)씨의 것과 일치해 부자 관계가 확인됐다.

아직도 구천을 헤매는 영혼들이 많다고 한다. 빨리 이들의 흔적이라도 찾아 영혼을 달래줘야 한다.

고운석 <시인 발구발전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