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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을 가르치는 사람이 정치인을 싫어한다면 세상이 웃을 일이지만, 사실 필자는 정치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적지 않는 숫자의 정치인들과 교유하면서도 어쩐지 그들의 말에 신뢰가 가지 않는 것은 한국의 정치 환경에서 오랫동안 형성된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이미 나에게도 착근 되어 있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는 것처럼 현대사회에서 그 누구도 정치를 떠나 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정치가 좀 더 정치답게 도모됨으로써 사회발전에 순기능적(順機能的)으로 작용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국회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일련의 정치과정은 과연 우리의 정치가 이러한 우리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다시 한 번 제기해주고 있다. 과연 정치는 사기(詐欺)이며 무용(無用)한 것인가.

이러한 회의는 언론 관련법의 국회통과 과정과 그 이후의 모습에서 더욱 깊어지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필자는 언론 관련법안의 내용에 대해서는 시비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그 내용에 있어서는 여당과 야당 간에 입장차이가 있을 수 있고 솔직히 이해관계도 다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며 더욱이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는 ‘소수의견의 존중원칙’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수결의 원칙’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선(大選)과 총선(總選)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받은 한나라당이 국정을 주도해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 것이며, 이에 대해 야당이 국회의장석 점거 등을 통해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위배하는 일인 것이다.

다만 소수당인 야당이 할 수 있는 일은 문제의 소지가 있는 법안의 내용을 국민들에게 소상히 알리고 그 부당성을 지적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여당이 잘못 가고 있음을 인식시키는 것과, 그들의 주장을 여야간 협상을 통해 반영하는 일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국민들이 야당의 주장에 공감하게 되면 국민들은 다음 대선과 총선에서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야당을 지지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 국민들은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높은 정치의식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지난 총선에서 그토록 높은 지지를 받는 한나라당이 불과 1년여의 기간에 그 지지율이 바닥을 헤맬 만큼 추락하고 있는 데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나름대로 공정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함께 생각해보자. 사회를 맡은 국회부의장이 그것이 비록 실수였다고 할지라도 “투표를 종료합니다.”라고 선언하였으면 그 다음에는 개표결과(가결 아니면 부결)를 발표해야 하는 것이며, 이는 그 회의장이 국회가 아닌 초등학교 학생회에서도 통용되는 원칙이다.

만약 지난 회의에서처럼 투표종료를 선언해 놓고 의결 정족수에 부족된 것을 안 이후 의장이 “다시 투표하겠습니다.”며 하루가 지나든 한 달이 지나든 의결 정족수가 충족될 때까지 투표를 계속한다면 세상에 부결될 안건이 어디 있겠는가.

이제 한나라당이 할 일은 너무나 분명하다. 사회를 본 부의장이 잘못을 시인하고, 의결정족수 미달로 부결된 법안을 국회법 절차에 따라 새로운 회기(會期)에 재상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여당이 원칙을 지켜간다면 적지 않는 국민들은 집권 여당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며 그 길만이 한나라당이 국민적 지지를 회복하는 첩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옛말에 “어려울 때일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아직도 3년 가까운 집권기간을 가지고 있는 한나라당이 무엇이 그리 급해 조급과 졸속의 우(寓)를 범하는가. 한나라당은 모든 것을 상식에 바탕하여 처리하는 것이 최선의 정책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오수열 <조선대학교 사회과학대학교수 정치외교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