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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마음에 그리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 가운데서도 집에 대한 생각은 예나 지금을 막론하고 단연 으뜸의 관심사일 것이다. 마음에 든 집을 상상하고 그려본 글 가운데 인구에 회자되는 명문으로, 조선후기 소품문(小品文)의 유행을 선도한 혜환 이용휴(1708~1782)의 <구곡유거기(九曲幽居記)>를 소개한다.

“깊은 산중 인적이 끊긴, 골짜기가 아닌 도성 안에, 외지고 조용한 한 곳을 골라 몇 칸 집을 짓는다. 방안에 거문고와 서책, 술 동이와 바둑판을 놓아두고 돌 벽을 담으로 삼고 약간의 땅을 개간하여 아름다운 나무를 심어 두고 멋진 새를 부른다. 남은 땅에는 텃밭을 가꿔 채소를 심고 그 것을 캐서 술안주를 삼는다.

또 콩 시렁과 포도나무 시렁을 만들어 서늘한 바람을 쏘인다. 처마 앞에는 꽃과 수석을 놓는다. 꽃은 얻기 어려운 것을 구하지 않고 사시사철 묵은 꽃과 새로운 꽃이 피도록 할 것이며 수석은 가져오기 어려운 것을 찾지 않고 작지만 야위어 뼈가 드러나고 괴기한 것을 고른다.

뜻이 맞는 한 사람과 이웃하는데 집을 짓고 집안을 꾸밈이 대략 비슷하리라. 대나무를 엮어 사립문을 만들어 그 곳으로 드나든다. 마루에 서서 이웃을 부르면 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그의 발길이 벌써 토방에 올라와 있을 것이다. 아무리 심한 비바람이라도 우리를 방해하지 못한다. 이렇듯 넉넉하게 노닐며 늙어 가리라.”

이렇게 살면서 늙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이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 현대인의 삶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인다. 시대적 혼류에 부대끼고 쓰라린 시련의 비애를 맛본 이용휴에게는 간절한 희망 사항이 될 수 있었던 그윽한 집(幽居)에 대한 집착이겠으나, 거창한 논거를 들이대지 않아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 산다는 것은 어쩜 산 다기 보다는 연명이요, 죽을 날을 기다리는 허망한 나날이 아닐까 싶다. 공자가 노자나 장자를 왜 이단이라 했는지 곰곰 생각게 하는 대목이다.

사람 속에서 서로 부대끼고 의지하며 희로애락을 맛보는 재미, 그 더불어 함께 함 속에 눈물이 있고 웃음이 있으며 보람과 의의가 있을 터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여러 요인에 의하여 노령, 고령 등 퇴직 후의 삶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으며 이는 날을 더하여 가속화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노후를 설계하고 여생을 마무리할 것인가? 쉽지 아니한 질문이기에 답 또한 간단치 않다. 하지만 아름답게 늙기 위해서는 늙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우리 어른들은 늙는 연습 곧 늙음에 대비하여 돈을 버는 일에 너무 집착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돈 버는 일에서 물러나면 마땅히 할 일이 마뜩찮다. 나이 들면 대화 상대가 그립기 마련인데 젊은 시절 노는 방법, 대화하는 요령, 사교술이나 여가 활동에 너무 소홀하다 보니 늙어 갑자기 공허해짐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 아니겠는가. 딱히 취미가 없으니 함께 하는 친구를 찾기 어렵고, 늦게야 춤이나 수영, 악기 하나 배우려니 손과 맘이 따로 되어 괜한 스트레스만 받기 예사이니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물론 해내고 말겠다는 용기와 노력이 요구됨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또 하나 나이가 든다는 것을 인정하고 순순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데 이는 분명 체념이 아니라 노하우여야 한다. “요새 것들 다 저래”가 아니라 “우리는 저 나이 때 더 했지, 뭐”하는, 생의 노하우, 이것이야말로 스트레스를 줄이는 첩경 중 하나이다. 그래야 줄을 서서 기다리는 단체 행동이 즐겁고, 시중을 들어주는 사람이 고맙게 느껴지며, 공동의 시설과 물건이 내 것처럼 아깝고 소중하게 다가올 것이다. 나이 들었다는 것은 결코 수치가 아니고 부끄러움도 아니지만 그 것이 마냥 특혜를 받거나 특권을 누리는 그 무엇도 아니기 때문에 어른 되기가 쉽지는 않다고들 말했나 보다.

여럿이 한데 얼려 땀 냄새 마늘 냄새 등 사람 향기 마시며 등 만져 밀어주고 앞장 서 끌어주는 이름다운 퇴장의 연습, 그것이 늙음의 미학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함께 모여 사는 연습,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 이후 그 연습에 너무 인색한 나머지 늙어 외로움을 맞는 게 아닌지….

최한선 <전남도립대학 교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