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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관계법’을 놓고 전개된 여․야간 격렬한 대립 끝에 의원직 사퇴라는 배수진과 함께 장외투쟁에 나섰던 민주당이 조건 없는 등원을 결정하였다고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매우 잘한 일이다.

물론 민주당이 국회를 박차고 장외 투쟁과 의원직 사퇴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없지 않았을 것이지만, 국정의 중요한 한 축(軸)인 야당이 존재하지 않는 의회정치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민주당의 장외투쟁과 의원직 사퇴 선언은 적지 않는 국민들을 불안케 했기 때문이다.

근대 이래 정치의 근간은 국민의 대표로 구성되는 의회에서의 토론과 결정으로 이루어지는 의회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이는 의원 내각제는 물론이고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의회에서의 토론과 결정은 세 가지 원칙과 조건이 준수되어야 효율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 다름 아닌 ‘상이한 의견에 동의하는 원칙’(the axiom of agreement differ)과 ‘다수결의 원칙’(the axiom of the majority principle) 그리고 ‘타협의 원칙’(the axiom of compromise)이 그것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이라는 다수결의 원칙에 앞서 상이한 의견에 동의하는 원칙이 제시된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매우 커다란 시사를 주고 있다.

이것이 곧 ‘소수의견 존중의 원칙’을 지칭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상이한 의견에 동의하면서 타협을 진행시킴에도 불구하고 의사결정이 난항을 겪을 때에는 마지막으로 다수결의 원칙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적어도 그 과정에서는 수많은 협상과 고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투쟁해온 우리 선배들은 명철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지난날 우리의 정치가 이러한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에 대해서는 심히 자괴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권위주의적 정권하에서 우리는 정치에서도 능률만을 강조하였으며, 토론과 대화는 낭비적인 것으로 치부하여 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우리의 정치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타협과 협의의 부재현상은 어찌 보면 장기간의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민주주의를 제대로 학습할 기회를 갖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여당은 수적 우세를 앞세워 ‘밀어 붙이기식’으로 일관하였고, 야당은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한 불가피함을 내세워 ‘극한투쟁’으로 일관하였으며 심지어는 국민들도 극한투쟁이 곧 야당의 선명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하였던 것이다.

이제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도 회갑의 연륜을 넘겼다. 그만큼 성숙해질 때가 된 것이다. 정치가 무엇인가. 국민들을 평안(平安)케 하는 것이 정치라고 할 때, 의사당에서의 극한 대립과 폭력은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의 존재 자체를 불필요한 것으로 인식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일이다.

지금 우리 국민들의 정치적 분별력은 국회의원들의 수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국회의 정상화를 통한 민생법안의 통과를 시급한 국정과제로 꼽으면서도, 언론관계법의 국회통과는 절차상 문제가 없지 않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라는 사실을 통해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이미 우리 국민들은 사안에 따라 그 정당성 여부를 판단하는 정치적 수준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아무쪼록 민주당은 이번 등원결정을 통해 민주당이야말로 진정으로 의회주의를 옹호하는 정당임을 국민들에게 확실하게 인식시키고 ‘9월 정기국회’를 통해 산적해 있는 국정, 특히 서민의 어려운 살림살이를 보듬는 민생정당이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가깝게는 10월 재보궐선거에서 평가 받고 멀리는 다음 대선에서 정권을 담당할 수 있는 대안정당이라는 인식을 확고히 심어주기 바란다

오수열 교수<조선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