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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을 막론하고 늘 지극했음은 두루 아는 사실이다. 내 고향, 그 곳이 뭐 그리 다른 사람의 고향과 다르랴마는 그래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지 않는가 보다. 하여 까마귀도 고향 까마귀가 반갑고, 눈(雪)도 고향 눈이 더 다정하다는 말들이 생겼으니 말이다.

고향이나 향토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은 그 곳에 자주 발길을 머물게 하고, 그러다 보니 그 곳으로부터 남다른 느낌과 생각이 생겨나 무한한 자긍심을 불러일으킨다.

애정은 이름짓기에서 나온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하여 애칭을 여럿 붙이듯. 퇴계 선생이 명명한 도담 팔경이나 고산 윤선생이 붙인 보길도의 혹약암 이라든가 동천석실, 정 다산 선생이 강진 다산초당 주변에 붙여둔 약천이나 정석 바위 등이 그 것일 게다. 지금은 아주 보편화 된 말이지만 어디어디 팔경이란 말도 알고 보면 고향 사랑 또는 향토애의 발현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잘 아는 바와 같이 팔경(八景)이라는 말은 중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호남성 동정호 주변, 곧 소수(瀟水)와 상수(湘水)와 만나는 곳의 아름다운 모습을 여덟 가지로 읊고 그린 데서 연원한다. 소상(소수와 상수)팔경이란 말이 그 것이거니와 그림이 먼저인지 시가 먼저 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고, 최초 그림이 10세기에 나왔다느니(李成의 소상팔경도) 11세기 송적(宋迪)의 것이 최초라느니 등 주장이 엇갈린다.

어쨌든 소상팔경은 그 뒤 고려를 비롯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 예는 그림, 시, 소설 등에서 확인되거니와 김시습의 만복사저포기를 비롯, 김만중의 구운몽이라든가 심청전, 춘향전 등은 물론 안견과 정선의 소상팔경도 그림 등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특히 안평대군은 소상팔경도를 그리게 하고 거기에 하연, 성삼문, 신숙주, 김종서, 최항 등 당대 대문호 십여 명에게 화답시를 짓게 했던 사실은 유명하거니와 그때 그린 그림은 전하지 않지만 화답시첩은 ‘비해당 소상팔경시첩’이란 제목으로 전해온다.

이러한 소상팔경의 위력은 고려 오백년과 조선 오백년을 집어삼키고도 무슨 여한이 있는지 오늘날까지 무슨무슨 신 팔경이니 어디어디 신 이십경이니 하는 이름으로 당당하게 행세를 하고 있으니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모를 일이다.

중국의 호남성 동정호 주변을 가보지도 않고 그려대고 써 댔던 저 소상팔경도와 시편들, 참 우습지 않은가? 그래 지금도 꼭 대한팔경, 조선팔경하던 구태를 이어받아야 옳은지? 좀 더 시대감각에 맞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명칭은 없는지? 생각하고 고민할 일이다. 불요불급한 일은 시간을 두고 생각에 생각을 보탤 일이다.

필자는 언젠가 ‘광주 팔경’ 선정을 두고 일 갈을 내뱉은 적이 있거니와 무슨 일에 있어서의 공감과 합의는 참 중요한 것이다. 한 번 결정되고 나면 두고두고 불릴 명칭이 아닌가. 광주의 집약적이고 상징적인 이름 붙이기를 몇 사람이 성급하게 서두를 일은 아니었다고 본다.

이제라도 새롭게 위원회가 구성되었다고 하니 환영할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아름다운 이름, 그럴듯한 이름 그러면서도 낭만이 있고 멋스러움과 무게감이 느껴지는 그런 명명이 기대된다.

어제 한 학생이 물었다. 전주 그러면 비빔밥이 생각나는데 광주를 대표하는 음식은 뭐냐고. 글쎄, 누구나 합의하듯 답할 수 있는 광주의 음식이 무얼까? 오늘을 사는 우리, 무엇이 급하고 어떤 것이 보다 더 중요한 지 고민 좀 많이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대구시는 문학영재반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아시아 문화수도, 예술 광주를 표방하는 우리들,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광주시에 건의한다. 기성 작가들에게 예술 창작을 지원하는 일 못지않게, 문진위 등을 통하여 예술 꿈나무 육성에도 큰 관심을 가져달라고. 예술이든 학문이든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지원과 교육 보다 더 좋은 육성책은 찾기 힘들다는 명백한 사실에 눈뜨기 바란다. 그 나물에 그 밥, 이제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 문화수도 광주, 그 새파란 싹수를 보고 싶다.

최한선 <전남도립대학 교수·한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