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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대이동을 통하여 전국의 민심(民心)이 드러난다는 ‘한가위’가 금년에는 짧은 연휴 탓인지 어느 때보다도 조용히 지나갔다.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의 입에서도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없었으니, 이는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최대의 관심이 정치가 아니라 경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경제와 정치를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처럼, 어려운 경제를 해결할 책무를 짊어지고 있는 사람들 또한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정치에 무관심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10월에는 거의 전국적 범위에 걸쳐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되어있고, 내년 6월에는 지방자치 선거가 예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추석 민심은 정국(政局)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관심사일터인데도 마치 ‘정치의 실종’을 운운할 만큼 조용하기만 한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야당의 활동이 보이지 않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대의제민주주의 하에서 그 기본은 정당간의 경쟁에 있으며, 이러한 경쟁을 통하여 민의(民意)가 왜곡됨이 없이 표출되고, 정치과정에 투입(input)될 수 있다는 것은 정치학의 기본에 속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쟁의 밑바탕에는 집권당(여당)과 반대당(야당)의 자유로운 경쟁이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유권자인 국민들은 집권당에 정치를 위임하면서도 야당의 활동을 통하여 집권당을 견제하고, 거기에서 또 다른 정치적 희망을 간직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 정치에서 야당의 활동은 물론이고, 그 존재 자체가 인식되지 못하고 있으니, 이는 실로 중대한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야당의 무기력이 앞으로도 지속된다면 이는 우리 정치의 파행을 넘어 자칫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하겠다.

추석 정국의 전초전적 성격을 띠었던 ‘총리 및 주요 공직자 청문회’에서 야당이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것이나, 추석정국에서의 핫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을 지켜보면서 적지 않는 국민들이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은 바로 강력한 야당의 존재가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지난날 우리는 박정희의 유신독재와 전두환의 군부독재 치하에서도 강력한 야당 덕에 민주주의를 지켜올 수 있었다. 지금은 그 때에 비교하면 제반 여건에서 훨씬 나은 조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문제는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과 국민을 믿고 투쟁하는 강력한 지도자가 존재하지 않는 데 있지 않는가 싶다. 과거의 야당에는 ‘김영삼’과 ‘김대중’이라는 강력한 리더십을 지닌 지도자가 있었던 데 반하여 지금의 야당에는 그러한 지도자가 없는 것이다.

강력한 지도자는 야당 내부적으로는 만난(萬難)을 헤쳐가는 에너지가 되기도하지만, 국민들에게는 야당에게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끈’으로 작용한다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수 있다. 유신독재시절 ‘YH여공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당시 야당과 지도자가 어떻게 대응하였는가를 성찰한다면, 지금의 ‘용산참사’에 대한 해답이 나올 터인데도 지금의 야당은 무기력하기만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어디 그뿐인가. 지금의 중요 화두가 민생문제라면 ‘가진자’에 가까운 정책을 추진하는 한나라당에 비해 유리한 쪽은 야당일터인데도 이슈를 생산해 내지 못하고 있다.

바라건데 야당이 기력을 회복함으로써 국정이 건강해지고 민주주의가 지켜지기를 바란다.

오수열 교수<조선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