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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가을의 복판을 지나고 있다. 문화예술계는 올 농사를 갈무리하느라 그 어느때 보다 분주한 모습들이다. 농부가 1년동안 피땀흘려 가꾼 곡식을 걷어들이며 풍요로움을 맛 보듯, 문화예술인 역시 그동안 갈고 닦았던 기량을 펼쳐보이며 기쁨을 만끽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차려놓은 예술의 향연을 수용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한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화예술인은 대부분 이 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다. 출생에서부터 혈연·지연·학연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좋은 인연들은 문화예술인에게 정신적·경제적으로 도움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데 문제다.

여기서 우리는 예술인의 한숨 섞인 목소리를 귀 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일년동안 뼈를 깎는 고통과 피땀어린 노력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심지어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대관료가 없어 동료들이 십시일반해 공연을 치르기도 한 예술인들도 있다. 잘 나가는 몇몇 예술인을 제외 하고는 대부분의 예술인들은 이처럼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연자가 작품을 무대에 올리려면 많은 홍보가 필요하다. 그러나 재정적인 압박 때문에 포스터 몇 장과 플래카드 한 두 개 부착하는 게 고작이다. 이러한 비용은 티켓 판매 수입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그런데 판매 돼야 할 티켓은 3분의 2이상 ‘초대권’으로 뿌려지고 있다. 이른바 ‘공짜 관람객’이 절반을 넘고 있다는 얘기이다.

인연을 중시하는 민족의 정서를 감안 한다면 지인들이 앞장서 공연티켓을 구입, 관람석을 한 석이라도 채워주며 격려의 박수를 보내줘야 할 터이다. 그런데 자신들의 몫도 부족해 또 다른 지인들의 초대권까지 수 십 장을 요구, ‘공짜 관람’을 하며 ‘특별 대우(?)’를 자랑으로 삼고 있는 게 우리지역 공연문화의 현실이다.

솔직히 말해서 ‘초대권 문화’는 서민들보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인사 일수록 더욱 익숙해져 있다. 문화전반에 걸쳐 악습처럼 퍼져있는‘초대권 문화’, 이것은 다른 사람들 보다 ‘특별한 대우’를 받기 원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작용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본다.

손뼉도 손바닥이 부딪혀야 소리 나는 법이다. ‘초대권’을 받는 사람도 문제지만, ‘공짜표’를 뿌리는 예술인들의 자세도 문제이긴 마찬가지이다.

‘내 공연에 누가 왔네’라는 과시용으로, 참석 기관장의 밸류에 따라 자신의 등급이 결정 되는 것처럼 비쳐지는 지역 예술계의 정서도 한 몫 하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몇 년 전으로 기억된다. 한 외신에 게재된 사진 한장이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질 않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 한 오페라 하우스 매표구 앞에서 줄을 지어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카터 미국 전대통령 내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이 한 장의 사진은 연출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한 무명오페라 가수의 공연을 보기 위해 아내와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은 우리 정서로서는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지역의 문화현실은 어떠한가. 전직 대통령은 차치 하더라도 전현직 관료들이 줄을 지어 티켓팅하는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아니, 상상 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초대권 문화’는 문화예술의 발전을 좀 먹는 폐단 중의 폐단이다. ‘문화수도 광주’의 면모를 살려내기 위해서라도 ‘공짜표’는 이젠 없어져야 한다. 그 길만이 지역 문화를 살리는 길이고, 고독한 길을 걷고 있는 예술인들에게 힘을 주는 일이다.

혹시 오늘 ‘공짜표’를 들고 공연장 주변을 얼쩡거리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할 일이다. 물은 절대 아래서 위로 흐르지 않는다. 먼저, 지역의 기관 단체장들이 앞장서 초대권 문화를 없애는데 솔선수범해 주길 바란다. 사람의 품위는 지위나 재력이 아닌, 생활의 향기에서 나오는 법이다.

최한선 <전남도립대학 교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