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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 : 2010. 2. 25(목) ~ 3.10(수)

장소 : 광주롯데갤러리(광주은행 본점 1층)

광주롯데갤러리에서 봄맞이 기획의 두 번째로 매화를 소재로 한 전시를 마련한다. 전시의 주제는 ‘梅香. 휘파람새 날아들다!’이다. 이는 매화와 휘파람새에 관한 설화에서 차용한 것으로, 시서화에 주로 등장해 온 예술적 소재로써의 매화의 특성, 혹은 예술인과 매화의 관계망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매화는 봄에 일찍 꽃이 피는 화목 중 하나로 겨울이 가고 봄이 왔음을 알리는 상징물이다. 더불어 엄동설한을 이겨내고 고고한 향을 내뿜는 매화의 자태는 선비정신의 상징이자, 문인과 묵객들에게 시와 그림의 소재로 자주 등장해왔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오견규, 박태후, 황순칠, 한희원, 이정래, 서병옥, 채종기, 김순희, 조수진 작가는 다양한 방식으로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대변한다. 한국에서의 매화 개화가 아직은 이른 터라, 참여 작가 중 일곱 명은 2월 중순께 일본에서 매화가 가장 일찍 피는 곳인 다자이후(太宰府) 천만궁으로의 기행을 단행하기도 했다. 다자이후는 백제문화가 가장 많이 일본에 유입된 곳으로, 백제의 패망기 백제 도래인들이 규슈지방을 지배한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천만궁 안의 수천그루의 매화나무는 그 수종만큼이나 현란했지만, 매화나무의 정돈된 기운은 화심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참여작가의 대부분은 봄의 기운만을 담아오며, 평소 느껴온 우리의 매화나무를 소재로 작업에 임했다.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古佛梅)를 화폭에 담은 목운 오견규 화백은 그윽한 달빛 아래 흐드러진 홍매(紅梅)를 표현했다. 달무리의 은은함과 검은 빛의 가지, 붉은 매화 꽃무리가 담담히 어우러지는 모습으로, 채 가시지 않은 초봄의 찬 기운마저 느껴지는 작품이다. 한희원 작가의 <마음속의 눈물 - 매화>는 서사적 심상이 눈에 띠는 작품이다. 죽은 연인의 영혼으로 여겼던 매화나무를 위해, 사후 휘파람새로 다시 태어났다는 도공의 이야기처럼, 못 다 이룬 사랑의 간절함이 암색의 화폭 안에 머무른다. 흩날리는 하얀 꽃잎은 마음속에 맺힌 방울방울의 눈물처럼, 작품 안에서 시적 감수성을 엿볼 수 있다. 시원 박태후 화백은 작품 <자연 속으로>에서 농묵을 통해 거침없는 이미지의 홈매를 표현했다. 화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붉은 꽃무더기는 드문드문하게 종종거리는 작은 새들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수직으로 쏟아져 내릴 듯한 꽃가지에선 긴장감이 느껴지고, 더불어 작품 하단에서는 봄날의 노곤함마저 묻어나온다.

서병옥 작가의 작품 <꽃담과 홍매화>에서는 황토 담벼락에 고풍스러운 문양으로 치장한 우리의 꽃담이 눈에 들어온다. 기하학적 패턴의 꽃담에서는 자잘한 흙의 질감이 느껴지고, 그 앞으로 검은 매화가지가 몸단장을 하고 있다. 토속적인 소재에서 정갈한 맛을 우려내는 작가의 심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배꽃 시리즈로 유명한 황순칠 작가는 작품 <梅花>에서 그 간 표현해 온 큼지막한 꽃송이마냥, 시점의 제일 앞면에 백매(白梅)를 드러낸다. 일필휘지로 무심히 내려온 듯한 짙은 가지 위로 희디 흰 매화꽃이 힘차게 자리한다. 시선은 당연, 암청색 가지가 아닌 그 위에 꽁꽁 붙어 있는 매화꽃으로 향한다. 작가가 작품에서 담아내고자 하는 순수함과 근원성, 혹은 완전함이 백색의 응집된 붓놀림으로 표현되었다.

문인화의 매력을 가득 담은 남계 이정래 화백의 작품 <淸香>은 제목만큼이나 청아한 느낌을 자아낸다. 푸른색 초목 뒤로 하늘을 향해있는 매화나무는 그 형세만큼이나 인고의 결과물을 피워낸다. 경칩 너머 첫 꽃망울을 피워낸 매화꽃의 맑은 향이 화폭 안에 머무른다. 청자와 옻칠 기법을 병행하는 것으로 유명한 도예가 김순희는 이번 작품 역시 청자 도판에 옻칠을 감행했다. <연못에 봄물 들다>라는 제목 아래 나전기법으로 표현한 수양매(垂楊梅)는 적갈색 옻칠 위로 수줍게 뻗어있다. 꽃가지 끝자락의 매화의 자림 매김이 단아한 인상을 풍기며, 청자색의 연못 위에 닿을 듯 말 듯 내려오는 형국이다. 설치 형식의 작품을 선보이는 채종기, 조수진 작가는 다채로운 재료로 매화를 해석한다. 분쇄된 지폐 시리즈로 이채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채종기 작가는 폐기된 분쇄 지폐로 매화 송이를 만들었다. 기다림과 인내, 봄의 상징인 매화와 자본의 상징인 지폐의 조합이 어리둥절하다. 매화나무의 암향 곁에서 느꼈던 충만함이 세속의 흥취로 치환된 것일까, 덩어리 채 놓여있는 꽃송이는 거북스러운 듯하지만 지금의 정서를 비유적으로 드러낸다.

금속공예가 조수진의 작품 <홍매화 피는 마을>은 소담스러운 전원 풍경을 보는 듯하다. 풍경의 한구석을 재현한 듯한 나무프레임 위로 망울진 홍매화가 탐스럽다. 시골마을의 스산함 너머에 자리한 붉은 매화는 그 한적한 시선만큼이나 반가운 존재로 다가온다.

입춘, 우수를 지나 경칩을 바라보는 길목에서 본 전시는 시작한다. 의미 그대로 봄을 기다리는 마음에서 출발하지만, 혹한에도 꽃을 피워내는 매화처럼, 이를 미적 심상으로 가다듬는 행위는 힘든 현실 안에서 희망을 찾는 행위와 유사할 것이다. 본 전시를 통해 초봄의 설레임을 가득 담기를 바라며, 암향 가득한 매화의 향연에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함께하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