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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전쟁만큼 나쁜 정신적 전율이다. 모든 정신이 그 곳에 집중되는 진흙탕이기 때문이다. 한데 미국에서는 몇 십년동안 변호사 명함까지 못 돌리게 했다. 명함을 돌리는 것이 자기 선전이 될 수 있는데, 선전하는 것은 변호사의 품격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법원에 제소를 했다. 미국 대법원이 이 사람의 손을 들어주었다. 대법원은 변호사, 아니 그 누구라도 명함을 못 돌리게 하는 것은 미국 헌법이 보장하는 자기를 표현하는 자유, 즉 언론의 자유를 위배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사람이 자기를 표현하는 자유, 그것은 사람에게 허여된 자유 중 가장 귀중한 것이고 소중한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도 언론의 자유를 가장 소중한 자유로 명기하면서 구체적으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을 때만 이를 억압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은행에서 강도가 들지 않았는데도 "강도야"하고 소리치는 그런 언론 자유만이 억압될 수 있다는 것이 한국 헌법의 기본정신이다. 이와 같은 언론의 자유에 관한 세계의, 그리고 한국 헌법의 정신에 비춰 볼 때 한국의 현행 선거법은 한마디로 위헌투성이 문제작이다.

후보의 언론자유를 억압한 정도가 아니라 그를 유린한 법이다. 불과 16일에 불과한 선거기간이 시작되기 이전에 후보는 자기가 출마를 한다는 의사표시 자체를 전혀 못하게 돼있다. "잘 부탁한다."라는 말 자체도 위법 시비에 휘말린다.

명함을 돌리는 것도 위법이다. 정말 소도 웃을 법이다. 도대체 후보가 자기가 출마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 명함을 돌리는 것이 공중에게 어떤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을 초래하기 때문에 그렇게 시민의 언론 자유를 억압한단 말인가? 뿐만 아니라 이 선거법은 대한민국 헌법이 명백히 금하고 있는 사람차별도 공공연히 하고 있다.

모든 후보들이 못하는 유권자 접촉을, 현 국회의원이나 단체장⦁광역의원 등은 지역구 사업을 구실로 모두 자기자랑과 홍보를 공공연히 할 수 있게 돼있다. 함에도 신인은 16일간의 선거기간이 시작된 이후에도 제한은 계속된다.

벽보, 그리고 유권자의 가정에 배달되는 4쪽, 그리고 8쪽짜리 홍보물을 제외하고는 후보자가 자기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플랜카드도 못 붙이고 명함도 돌릴 수 없다. 도대체 후보가 플랜카드를 붙이고 명함을 돌리는 것이 공중에게 어떤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을 부과하는가?

이런 웃기는 일들이 가능하게 된 것은 선거법을 만든 의원들이 신인들의 진출을 어떡하든 막아보려 작당해 검은 양심을 보인 것 외에는 어떤 설명도 가능하지 않다. 현 의원들은 이미 알려져 있으니 신인들이 자기를 알리지 못하게 하면 할수록 현 의원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다.

선거 비용을 줄인다는 미명 아래 신인들의 알리는 활동을 제한해 그들의 속을 채운 것이다. 선거 비용은 법으로 제한돼 있다. 그 한도 안에서 각 후보들이 돈을 플랜카드를 붙이는데 쓰는지 명함을 찍는데 쓰든지, 남들이 관여해야 할 이유도, 어떤 당위성도 없는 것이다.

선거판의 진짜 죄악은 돈을 쓰거나 흑색선전을 하거나 공무를 가장한 선거운동이다. 선거관리위원회는 부족한 일손으로 예비후보들이 자기를 알리는 것을 잡느라 이런 진짜 죄악들에 대해서는 손을 별로 쓰지 못한다.

이렇다보니 죄도 아닌 것을 잡느라 진짜 죄는 대부분 봐준다는 말이 나온다. 언론도 기성 정치인을 돕는데 한 몫을 했다. 여론 조사라는 것을 통해 기성 정치인들을 크게 도와주었다. 신인은 이미 잘 알려진 기성 정치인에 비해 여론조사가 불리하게 나올 수 밖에 없다.

여론 조사가 기성 정치인에게 유리하게 나오면 승자에게 붙고 싶어하는 사람의 심리 때문에 돈과 사람은 기성정치인에게 더욱 몰리게 된다. 소도 웃을 선거법 때문에 이미 불리한 신인은 더욱 불리하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 선거판은 불공정 게임 그 자체다. 이젠 정치권⦁언론⦁시민단체들이 힘을 합쳐 위헌 투성이 선거법을 인식하고 감시해야 한다.

고운석<시인. 남구발전협의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