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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하여 ‘글로벌’시대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사람들의 대화를 듣다보면 정체모를 언어들이 난무한다. 게다가 인터넷 언어니 문자 용어니 하여 ‘크리’(매우 많다), ‘샘’(선생님), ‘하삼’(하시지요) 등 도무지 어원이나 뿌리를 알 수 없는 말들이 봄비에 벚꽃지듯 마구 내린다. 그뿐이 아니다. 서로 ‘토킹’(얘기)하여 ‘컨센서스(의견일치)’를 하면 ‘보이콧(거부)’하자는 등 영어 부스러기 같은 말들도 글께나 읽었다는 축에서 판을 친다. 이러다가는 국어사전에 외래어나 신조어 등 그 내력이나 정체가 불분명한 말들이 터줏대감 노릇을 할 위험 지경이 심각하다. 한 아버지가 계셨다. 두 아들을 불러 놓고 “우리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 “우리 국어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당부를 했던 한 아버지가 계셨다. 두 아들 중 장남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온 몸으로 한국사를 공부했고, 차남은 한국어를 공부하여 국사와 국어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이름 하여 고 이기백 박사와 이기문 교수가 그 주인공이시다. 이기백 교수님의 ‘한국사 신론’과 이기문 교수님의 ‘국어사 개설’은 초판에 이어 수차례의 개정판이나 보정판을 거듭하면서 우리 역사와 국어를 올곧게 길라잡이 하고 있음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국어사 개설’은 60년대 초판이 나온 이래 반세기의 역사를 지내면서 여러 번 더하고 보태기, 빼고 덜기를 계속하여 우리 국어사 연구의 ‘보물’로 평가 받고 있다. 글로벌 시대라 하여 캐나다, 호주 등 외국으로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민자들의 고민거리 중 가장 큰 것은 그 이민국의 국사 시험을 통과하는 일이란다. 그 말을 들으니 왠지 입맛이 씁쓸함을 떨칠 수 없다. 이민자에게 요구하는 이민국의 국사 실력이라니…. 나는 행복하게도 집에 앉아 편안하게 시집 등 문학 신간서적을 받아들곤 한다. 저자들이 직접 부쳐 보내 한 번 봐주라는 것인데, 하지만 그런 책을 볼 때마다 너무 자주 기분이 상하기 일쑤이다. 왜 그럴까?

다름 아닌 문학하는 사람들, 특히 시를 쓰는 사람들의 모국어에 대한 상식 이하의 수준 때문이다. 시인은 모국의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라도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 그를 통하여 모국어를 갈고 닦아야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사람이 아니던가? 시인과 모국어의 관계는 학자와 권위의 등식이 아닐까?

어찌 시인이라는 가면을 쓰고 정체모를 말, 근원 없는 말에 재미내고 신명내야 하는지 안타깝기 짝이 없다. 시인은 직무를 유기해선 안 된다. 문학의 진정성 이전에, 모국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우선으로 가질 수 없다면, 그렇다면 그는 시인이 아니라 잡문으로 모국어를 망치는 사람에 다름 아니다.

시인은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에서 가장 먼저 권위를 인정받는 사람이다. 흔히 우리는 권위주의를 타파해야 한다고 열을 내곤 한다. 물론이다. 융통성 없고 아집에 사로잡혀 퇴행적이거나 비생산적인 권위주의라면 백 번, 천 번 없애고 떨쳐내야 한다.

하지만 시인의 모국어를 통한 창작의 진정성과 학자의 신념에 찬 연구에 대한 권위, 그 권위는 당당하게 지켜야 하고 또 지켜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권위와 권위주의는 분명 다른 것임을 잊어선 안 된다.

스승은 학문 연구에 평생을 걸고, 제자는 그런 스승의 학문적 업적에 권위를 느껴 존경하고 흠모하는 학풍, 그 것은 결코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요, 또 아무나 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그런 풍조에 삼가 머리가 숙여진다.

역사를 바로 바로 세우고, 국어를 바로 잡으라는 아버지의 당부를 온 몸으로 실천한 두 아들, 그 두 아들이 한국사와 한국어의 아버지가 되었다면 너무 지나친 과장일까? 시절이 참 수상하다. 봄인지 겨울인지 90년만에 최저 기온이라는 이상 기온이 우리를 엄습한다.

무슨 징조일까? 국사가 선택인 이 나라, 국어마저도 밀리고 치이고 있는 이 나라, 이전 신라가 망할 무렵 오악의 신들이 나타나 무슨 신호를 보냈다는데….

최한선 <전남도립대학 교수·동아인문학회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