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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누구를 뽑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를 뽑지 않기 위해 투표를 해야하는 것이다. 한데 이를 유권자들이 거꾸로 생각하고, 거짓과 모함에 넘어가 뽑아야 할 사람을 못 뽑고 있다. 비리가 판을 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허구한날 6.2 지방선거타령, 오늘 이 자리에 서만은 선거 얘기 꺼내기 없기다” 친목모임이나 동참 모임 등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만장일치. 한 10분이 지나가는 동안 모두를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한쪽 구석에서 “에이 독한 인간들아, 그래 지방선거 어떻게 될 것 같아? 특히 단체장은 누가 될 것 같아?” 라고 터져 나온다.

요즘 밥 먹고 술마시는 자리마다 입 안으로 그 반찬과 안주가 어떻게 들어가는지는 몰라도,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은 틀림없이 ‘지방선거’ 이다 저마다 막 떠들지만, 어느 한 구절 버릴데가 없다. 그 논리 정연함은 마치 합숙 공부를 한 듯하다.

비록 먹고사는데 빠듯해도, 모두는 이 땅의 정치 전문가들로 타고난 것 같다. 한데 투표결과는 말과 다르게 나온다. 휴게실에서 우연히 한 시집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말할 수 없는 것들/말 안해도 되는 것들/말 하나마나 한 것들/ 말하고 나면 후회할 것들/ 말 안하면 우습게 보는 것들/기어코 말해야 하는 것들/굳이 말 안해도 되는 것들···” 생략<박용하: 입김>

3월 봄 햇살에 안주삼아 정치판 ‘말 안해도 되는 말들’ 을 비롯한 온갖 종류의 말들이

더욱 많아지겠다. 한 해의 묵은 말만이 아니라, 어쩌면, 4년간 썩히고 발효된 말들이 장승업의 ‘군마도’처럼 몰려올 것이다. 그 말들은 그 말끼리 서로 다투고 부딪치고 몰아내고 파묻히고 혹은 발광할 것이다.

말들과 말들 속에서 우리의 한 해 새봄은 정녕 가버릴 것이다. 평소 한 푼 두 푼에도 째째하고, 주머니 속을 잘 따지는 사람들이 선거철만 되면 ‘연산’ 능력을 잃은듯 하다. 누군가가 광역단체장이 되면 어떤 좋은 일이 생길까. 아마도 그 후보의 근방에서 얼쩡거렸던 당원들(혹은 건달). 눈치보고 줄을 바꿔선 사람들, 사업가들, 문화인, 동문 등 한 줌의 무리이거나, 혹은 사돈 팔촌으로 연결된 또 몇 줌의 무리들에게 뭔가 ‘고물’이 떨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저 바닥의 숱한 서민들이 과연 저 몇 줌의 무리 속에나 들어갈까. 무슨 연줄이라도 있을까. 직접 덕 볼일이 있을까. 민선 4기동안 어떤 혜택을 입어본 적이 있었을까. 당신이 열렬히 지지했고 표를 던졌다는 걸 그분이 알까.

마치 처음 짝사랑 할 때 눈 멀고 귀먼 것처럼, 이들은 후보보다 더 달아 오른다. 간혹 사생결단이라도 해보일 태세이다. 이런 ‘비합리적’인 열정과 환각이 민주주의 선거제도를 지탱해온 것인지 모른다. 소위 지도자란 추종자들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지도자가 추종자들을 끌어오는게 아니라, 이런 추종자들이 몰려들어 지도자를 만들고 움직인다. 지금 예비 후보들의 벽보를 보면 온갖 ‘교태’를 다 떨고 있다. ‘좋은’ 시장, ‘능력’이 있는 군수, ‘부지런한’ 광역의원, ‘믿을 수 있는’ 도의원···. 그럼에도 우리같은 사람들은 어느 추종자에도 끼지 못해 선거일까지 불안하다. 몰래 심정적 동조자가 되는 것조차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절실하게 깨닫는 것은 우리가 해온 선택에서 최선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그때 최상의 선택이라고 여겨도 나중에는 분명 후회할 일이 생기고, 마뜩찮게 선택한 것이 오히려 기대 이상이 되는 경우가 선거결과다.

고운석 <시인. 무진주문화마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