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프린트하기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도장마을. 동북쪽으로는 고당산, 동쪽으로는 해망산, 서쪽으로는 덕사봉, 마을 앞으로는 정전천이 흘러 약간의 평야가 있는 전형적인 산골이지만 마을 뒤 해망산의 씩씩한 정기를 받아 후손이 항상 도와 의를 숭상하고 마을이 항상 웅장하게 번창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도장리라 했다는 마을.

이 곳에서 작은 마을잔치가 준비되고 있었다. 한가위를 맞이하여 마을사람들이 걸판지게 한판 놀이마당을 펼쳐보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놀이판을 만들어 객지로 나간 고향사람들이 마을로 돌아와 신명지게 놀다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마을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사진전을 준비했던 것이다. 마을에 사는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모두 전시장에 등장하는 사진전이었다.

“나 같은 늙은이 찍어다 어디다 쓰게” 하는 어르신들한테는 그냥 눌러앉아 말상대 노릇을 한다. 객지에 나간 자식 얘기, 추석 때 돌아올 손주놈들 얘기, 젊었을 적 화려했던 추억들…. 삶은 밤 까먹으면서 도란도란 하다 보면 어르신들은 카메라 앞에 자연스럽게 얼굴을 들이민다.

80여 곡의 ‘도장골 밭노래’ 아직도 남아 있어 앵글 속에 잡히는 얼굴은 대개 주름살 자글자글한 할머니들이다. 도장골엔 할머니들이 많다. 도장골에선 남자보다 여자들이 열 일을 한다.

남자들은 마을 정각에 모여 운주사 쪽 개천산 자락을 넘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겨드랑이 할랑일 때, 여자들은 모두 도장골 밭고랑에서 일하느라 정신없다. 그렇게 밭일은 여인들의 몫이다.

특히 도장골은 예부터 목화가 많았다고 한다. 밭이란 밭에는 온통 하얀 목화꽃이 피어 눈세상 같았다고 한다. 그런 목화를 심고 풀 메고 무명 따는 일은 온전히 여인들 몫이었다. 그럴 때 부른 노래들이‘도장골 밭노래’다.

<감태산 감태산 육자백이로 감태산/ 늘높이 밥묵고 날날이 잠자고 나무하러 가세/ 면장이나 되얏는가 중장이나 되얏는가/ 파장이나 되얏네/ 오두랑 꼬두랑 땅바지 길게잡어 곤바지/ 모두락가에 쉬영 놓고 쉬영 찾기도 난감해/ 잔후박밭에 바늘 놓고 바늘 찾기도 난감해/ 물팎밑에 골미 놓고 골미 찾기도 난감해/ 치매에다 사새 싸고 가새 찾기도 난감해/ 난감해 난감해 날고 같이도 난감해>

모두 80여 곡의 밭노래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은 30여 년 전부터 마을청년들을 중심으로 ‘도장리 농우회’가 조직돼 도장골만의 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전래되어 온 밭노래를 녹음하고 함께 배워서 전승되었기 때문이다.

1992년 제20회 남도문화제에 화순 대표로 나가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하는 등 다수의 경연대회에 참가한 경력도 있다. 그래서 지역 축제가 있으면 단골로 출연하고 방송에도 많이 나와 제법 인기가 있는 마을이다.

방앗간에 사진 걸고 살림살이도 전시하고 마을사람들이 모두 방앗간에 모여들었다. 지금은 자주 돌아가지 않는 방앗간이지만 여전히 마을에서는 가장 중요한 곳인데 이번 마을 잔치에 요긴하게 쓸 장소이다.

사진전을 이곳에서 개최하기로 했던 것이다. 참새만 들락날락하던 방앗간에 마을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옛날 사진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을 걸기로 했던 것이다. “살다 본께 별 희한한 전시도 보겄다”는 샘내댁은 앨범 깊숙이 꽂아두었던 낡은 흑백사진을 몇 장씩 찾아 나왔다.

마을 사람들이 단체로 화엄사 놀러가서 대웅전 앞에서 찍은 사진, 남해대교 앞에서 앞 줄 졸졸이 앉아 찍은 것을 보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추억에 잠길 것인가. “워따메, 요땐 우리도 솔찬히 이뻤었는디 언제 요로코롬 세월을 묵어부렀으까이.”

마을 사람들이 집집마다 요즘 쓰지도 않은 농기구며 살림살이를 마을회관으로 가져온다. 일명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양란 같은 봉선화가 핀 요강단지가 몇 개 보인다. 동네 아이들 킥킥거린다. 무명이 많았던 마을답게 개량한 베틀이 시선을 끈다. 지금은 쓰지도 않으니 어딘가 처박혀 있었을 저 물건들이 햇빛을 본다. 장난감인 줄 알고 만지작거리는 아이들에게 이곳은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워따메, 요땐 우리도 솔찬히 이뻤었는디…”

마을 앞에 환영 아치가 섰다. 짚으로 만든 날개를 얹었다. “이것이 오리지날 아치여.” 환영 현수막까지 붙이니 복원된 도장골 환영 아치가 제법 운치가 있다. 이제 환영준비 끝이다.

추석날. 사람들이 몰려든다. ‘방아실 전시관’에는 참새 그냥 지나지 않듯 사람들이 몰려들어 한바탕 웃음소리 요란하다. 앨범 속에 감춰졌던 사진이 모든 사람들 앞에 등장했으니 그 모습 당당하다.

우리 엄마, 우리 아버지, 우리 할머니, 우리 할아버지, 그리고 내가 전시회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이것 참 별일이로다. 입에서 터지는 추억 꽃이 방아실의 낱알보다 많겠다.

도장골 여인들의 애환이었던 밭노래 공연이 어김없다. 몰래 눈물 내비치게 하는 여인들의 삶의 한이 담긴 노래를 따라 부르는 시간. 따라 부르는 밭노래 아사리 잡탕 같지만 귀중한 시간이다. 그렇게 따라 부르다보면 할머니의 자글자글한 주름 속에 담긴 세월을 볼 것이고 꼭 잡은 손놓지 않을 게다.

제공 심홍섭(화순군 문화 관광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