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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꽃이 필 때는 나주, 금천으로 갈 일이다. 청초한 배꽃의 흐드러진 아름다움에 아무 말도 못하겠거든 그냥 아! 하는 느낌표만 비명처럼 외쳐도 좋다. 모처럼 누리는 봄날 호사에 호들갑을 떤다고 누가 탓하랴. 봄밤은 바람에 날리는 향기로 짧겠지만 보름달을 보기엔 아직 몇 날을 더 기다려야한다.

달빛이 배이면 술 보다 독하다던가. 휘영청 밝은 달밤이면 희디흰 배꽃은 소복 입은 청상보다 더 가슴 시리게 하고, 으스름 달밤이면 배꽃은 몽롱한 무늬를 그릴 것이다. 꽃 그림자를 입고 달빛 아래 마시는 한잔 술이나, 달빛 잠긴 차 한 잔에 뉘라서 취하지 않을 것인가.

과일은 오래 전부터 인류의 식생활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안에 간직하고 있는 생명의 약속인 씨 때문에 풍요와 번영의 상징으로 신들의 향연에 다양하게 등장한다.

인간의 미각욕구는 물론 오감을 충족시켜 주는 과일은 기호품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모양과 색깔이 시각을 자극하고, 산뜻한 맛은 미각을 돋구며, 달콤한 향기로 후각을 열고 ‘ 사각사각’ ‘ 아삭아삭’ 씹히는 독특한 촉감은 먹는 즐거움을 준다

과일의 맛은 향과 과육의 조직, 수분의 함량 등 여러 요인이 어우러져 빚어진다. 과일은 비타민 C.A.P 등의 주요 공급원으로 생체로 먹기 때문에 수용성인 비타민 C를 많이 흡수할 수 있다. 또한 조리법과 무관하게 인체에 무기질과 비타민을 제공해준다.

배를 가리키는 한자어 ‘ 이(梨)’는 이로울 리(利)와 나무 목(木)이 합해진 것으로 사람에게 이로운 나무를 뜻한다. 배 재배를 장려한 기록은 삼한 시대 문헌에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전부터 있었던 과실로 생각된다. 옛날 봉산 배, 평양 밤, 울릉도 복숭아, 풍기 감, 보은 대추, 제주 감귤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과수(果樹)의 명산지였다. 지금은 나주가 배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배는 생식으로 먹는 것 외에 배즙, 생강, 꿀을 넣어 중탕해서 만든 술인 이강고(梨薑膏)로도 유명하다. 또 배와 생강을 원료로 하는 이강주는 조선시대 3대 명주의 하나로 꼽혔다. 건위와 피로회복, 강장에 효험이 있고 취해도 정신이 맑아지는 강점이 있다. 풍류객들은 배꽃을 섞어 담근 술을 이화주(梨花酒)라 하여 즐겼다.

배를 고를 때는 푸른기가 없고 맑은 황갈색으로 과피가 두텁지 않고 크기가 클수록 좋고, 차게 해서 먹을수록 맛있다. 배의 과육은 90%의 수분과 10%의 당분으로 나트륨, 마그네슘과 유산을 함유한 알카리성 식품으로 혈액을 중성으로 유지시켜준다.

배의 당분은 과당이 대부분이고 포도당과 유기산이 적어 신맛이 거의 없고 잼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배에는 소화를 돕는 효소가 많아 육회와 갈비 등의 육류에 넣으면 고기가 연해지고 소화를 돕는다.

배에는 씹을 때 오돌토돌한 석세포가 있는데 이 석세포가 변비와 이뇨작용을 돕고, 배를 먹고 남은 속으로 이를 닦으면 이가 닦여진다. 그래서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로 ‘배먹고 이닦기’라는 말이 있다.

한방에서는 배를 날것으로 먹는 것 외에도 담이 나오는 기침에는 배즙에 생강즙, 꿀을 타 먹으면 효과가 있다고 한다. 심한 기침에는 배 한개를 썰어 양젖이나 우유를 섞어 달여 먹이고, 어린이의 복통에는 배나무잎을 진하게 달여 4 ~ 5번 마시게 하면 복통이 가라앉는다.

표주박 모양의 서양배는 요리에 많이 이용되는데, 당분 함량은 높지만 수분과 비타민 함량이 적다. 날로 먹기보다는 통조림 등 가공용으로 적당하다.

우리나라 황금배가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기쁜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배는 모양이 잘 생긴 것보다는 조금 못난 것이 맛이 좋다. 번드레한 겉모양보다 잘 익은 속내를 가진 사람이 그립다.

김정숙 교수<전남과학대학 호텔조리 김치발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