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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인 쾌락은 저속한 것이다. 다정한 벗들이 많이 모여 술을 마시면서 노래하고 춤추는 그 순간 즐겁지만, 화로불이 꺼지고 차마저 식을 때쯤이면 즐거움은 온데간데없고 울고 싶을 정도로 처량해진다.

세상의 부귀와 영화도 이와 같이 사람에게 기쁨을 주나 오래가지 못하며 그 종말은 허무하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런 일시적인 쾌락에서 머리를 돌려, 도덕적인 만족에서 느낄 수 있는 영원한 쾌락의 고귀성을 깨달아야 한다.

한데 지체 높은 검사들… 최근 스폰서 검사 사건 뉴스를 읽다보면 우리가 사는 세계의 도덕적 만족은 빠르게 무너진다는 생각이 든다. 서슴없이 저지른 악행을 접할 때는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날만 세면 펑펑 터지는 사건들을 보면 마음이 몹시 피로해지면서 정말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래서 작심하고 인간을 분석한 인문서를 새삼스럽게 읽어보기도 했으나 어떤 책에서도 해답은 얻을 수가 없었다.

▶아동 성폭행범과 검사의 성 접대

고민에 빠진 사이 어린 여학생이 대낮에 자신이 다니는 학교 운동장에서 납치되어 폭행을 당한 사건이 터졌다. 아이는 몸과 마음에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입었다. 누구도 타인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지 못한다.

부모가 통곡하고 이웃이 치를 떨고 있지만 짐작할 뿐이다. 이런 일이 너무도 끔찍해서 범인이 우리와는 아주 다른 변종인줄 알지만 그 역시 나와 똑같은 DNA구조를 가진 인간이다.

다만 범인 김수철은 전과 12범으로 2009년 교도소를 나온 뒤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정신병원을 찾았던 인간이다. 그런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법을 잘 적용해야할 검사들이 이런 의무보다는 사리에 눈이 멀어 국민의 비난을 받고 있다.

문제는 이런 검사들 즉 스폰서 검사들도 나와 똑같은 DNA구조를 가진 인간이다. 스폰서 검사 사건은 비폭력적이었다. 죽음과 같은 피해자는 없었다. 하지만 MBC가 방영한 PD수첩을 본 시청자들의 비난이 강도 높게 쏟아졌고, 신문들은 이를 크게 보도했다. 여론에 굴복한 대검찰청은 ‘검사 향응 접대’ 의혹진상규명위원회가 징계를 청구했다.

대검은 박기준 부산지검장 등 6, 7명에 대해 해임, 정직 등 중징계를 건의할 방침이다. 한 두 차례의 향응 접대를 받은 것으로 확인된 나머지 3, 4명에 대해선 감봉 또는 견책을 청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 수뇌부는 진상규명위의 징계 건의를 그대로 수용하기로 하고, 징계 권고대상자 가운데 상당수를 중징계 건의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또 대검은 14일 오전 김준규 검찰총장 주재로 전국 18개 일선 검찰청의 차장검사와 8개 지청장, 대검 간부 등이 참석한 회의를 열어 11일 발표한 검찰 자체 개혁안을 일선에서 실천할 방법에 대해 논의했다.

그런데 이를 많은 국민들은 스폰서 검사에게 스펀지 같은 징계를 내렸다고 한다. 이미 예상한 결과라고도 한다. 당사자는 평생 법을 공부하고 법 지식을 심하하고 적용하는 일에 종사해 왔고 바로 그 사실로 인해 사회로부터 남다른 존경과 대접을 받아온 이들이다. 그래서 지켜보는 주위 분이 걱정하지 않아도 잘 빠져나가리라 짐작까지 해버린 이들이다. 그러나 일련의 처리 과정들이 결코 평화롭지 못했다. 위원회와 검찰 사이에 오가는 대사를 살펴본 결과다. 이 가운데에도 속보인 부분이 일부 드러났기 때문이다. 향응을 받는 등 비리가 인정되지만 직무와 관련한 대가성은 드러나지 않았다 한다.

징계라기보다는 앞으론 부디 들키지 말라는 애틋한 마음이 느껴질 정도이다.

검찰은 즉각 화답했다. 위원회의 권고를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앞으로는 술 문화를 반성하겠다며. 수사학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을 보면서 그들이 공소장이나 판결문을 통해 끊임없이 문장을 갈고 닦아온 사람이란 걸 새삼 깨닫게 한다. 법을 잘 모르는 나조차 성 매매가 현행법 위반이란 걸 아는데 법 집행의 주체인 그들은 성 접대에 대한 언급은 빼놓은 채 술 문화라는 두리뭉술한 말로 빠져나간다.

▶걸 그룹에 열광하는 주책 남 팬들

이 지점에서 일견 비폭력적인 듯한 이 사태는 앞서의 가혹한 사건과 어쩔 수 없이 연결된다. 잡혀온 성폭행 피의자 역시 비슷한 말을 늘어놓았다. 소주를 두 병 마셨다는. 술 취해 저지른 일은 죄가 아니라는 이 마초적 발상은 지위, 학력, 직업과 상관없이 이 사회에 깊숙이 번져있다.

문화라는 말이 행동의 양식이면서 동시에 사유의 양식이라는 걸 기억한다면 성매매에 술 문화라는 말을 붙이지는 못할 것이다. 갑작스럽고 느닷없이 일어나는 것 같지만 모든 사건은 사회라는 유기체가 내뿜는 날숨과 같은 것이다.

악취의 성분을 분석하면 사회의 욕망의 지도를 짐작할 수 있다. 간이 병들면 눈이 보이지 않고 콩팥이 병들면 귀가 들리지 않지만, 욕망에 병들면 죽을 수도 있다. 함에도 우리사회 전체가 왜 이다지도 저급한 욕망에 가득 찼을까.

TV화면에 나오는 걸 그룹을 볼 때도 비슷한 맥락에서 불편하다. 뽀얀 피부에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몸매. 그러나 젖비린내 나는 목소리와 달리 그들이 보여주는 도발적인 춤과 노출은 폐쇄적인 성인클럽에서나 보여줄 만한 모습이다.

영혼과 육체의 불협화음이 아슬아슬하다. 그 소녀들은 진짜 소녀들은 결코 줄 수 없는 점, 그러니까 남성의 성적 이데아를 구현한다. 이들의 가장 열성적인 팬이 주책남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 모른다.

조카 같다며 드러내놓고 열성 팬을 자처하지만 그들의 진정한 속마음을 누가 알리. 부모형제의 속마음도 모른다 않던가. 미성년자이거나 아직 가치관을 확립하기엔 미성숙한 그녀들은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소비되는 상품의 속성을 띤다.

꼭두각시처럼 부리다가 문제가 생기면 즉시 새로운 인물로의 대체도 가능하다. 어리거나 젊은 여성을 사물화 시키고 타자 화 시키는 데는 검사나 범죄자나 연예기획사나 대중문화를 향유하는 우리 자신이나 다 똑같다 하면 지나친 일반화라고, 억울하다고 펄쩍 뛸까. 도덕이 무너지고 부끄러움이 가득 차 있는데….

고운석 <시인. 무진주문화마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