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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소풍가기 전날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했던 지난 기억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40이 넘은 지금도 여행 전날이면 늘 잠을 이루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여행은 언제나 우리에게 특별한 기대감이나 설레임을 갖는다.

매창공원은 매창을 기리는 부안의 문인들이 묘비를 만들고 제사를 지내오다가, 2001년도에 부안군에서 새롭게 단장하였다. 공원의 위쪽에 매창의 묘와 묘비가 있었고, 공원 곳곳에 시비들과 소설가 정비석이 그녀를 애도하며 썼다는 비문이 세워져 있는 '매창공원'은 그 이름만큼이나 아담한 정취가 느껴지는 공원이다.

매창(梅窓 1573-1610)은 허난설헌, 황진이와 함께 조선시대 대표적인 여류 시인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녀는 부안현의 아전이던 이탕종(李湯從)의 서녀로 태어났다. 태어난 해가 계유년이라 하여 계생(桂生) 또는 계랑(桂娘)이라 불렀다.

본명은 향금(香今)이고 매창은 호이다. 그녀는 아버지에게서 한문을 배웠으며, 시와 거문고를 익히며 기생이 되었는데 아마도 어머니가 기생이었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매창은 시인 유희경, 허균 같은 이들과 사귀었는데, 특히 유희경과의 애틋한 사랑은 유명하다.

그녀의 대표작 '이화우'는 유희경과 이별하고 지은 이 시조는 이별가로서 이보다 더한 절창(絶唱)이 또 없을 듯하다.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난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이화우(梨花雨)에서 추풍낙엽(秋風落葉)으로 이어지는 시간적 이별이 일순간/ 천리 공간을 뛰어넘어 그리운 임에게로 향하고 있다/.

지금 같으면 서울과 부안은 고속도로로 달리면 3시간거리인데, 이 거리를 두고 두 사람은 마치 서로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듯 애절했다. 만약 매창이 문명의 발달로 편리해진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깊은 정이나 가슴에 품은 한을 그토록 아름다운 시로 담아내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한다.

매창은 1590년 무렵 부안을 찾아온 시인 촌은 유희경과 만나 사귀었다. 그녀도 유희경을 처음 만났을 때 시인으로 이름이 높던 그를 이미 알고 있었던 듯하다. <촌은집>에 이런 기록이 있다.

그가 젊었을 때 부안에 놀러갔었는데, 그 고을에 계생이라는 이름난 기생이 있었다. 그녀는 그가 서울에서 이름난 시인이라는 말을 듣고는 '유희경과 백대붕 가운데 어느 분이십니까?'라고 물었다.

그와 백대붕의 이름이 먼 곳까지도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로가 풍류를 즐겼는데 매창도 시를 잘 지었다. 이때 유희경의 나이 46세, 매창은 18세였다. 40대 중반의 대시인 유희경과의 사랑은 18세의 그녀로 하여금 그의 詩세계를 한 차원 높게 끌어올리게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무렵에 그들이 사랑을 주고받은 많은 시들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처음 만난 날 계량에게 "유희경 남국의 계랑 이름 일찍이 알려져서 글재주 노래 솜씨 서울에까지 울렸어라. 오늘에사 참모습을 대하고 보니 선녀가 떨쳐입고 내려온 듯하여라."

유희경이 매창을 처음 만난 날 그에게 남긴 시이다. 취한 손님에게(贈醉客) "매창 술 취한 손님이 옷자락을 잡아당겨 비단저고리 찢어 놓았지 비단저고리야 아까울 것 없지만 임이주신 은정마저 찢어졌을까 두려워라. 기방에 온 손님이 술에 취해 억지로 옷자락을 끌어당긴 탓에 비단적삼의 솔기가 뜯어진다."

기생의 신분인 매창은 비록 술자리의 인연이지만 잠시나마 손님에 대하여 품었던 좋은 감정까지 사라질 수 있으니, 자제하기를 바라는 완곡한 뜻이 담겨 있다. 시를 지어 무색하게 한 것이다.

스스로를 한하며(自恨) -매창 봄날이 차서 엷은 옷을 꿰매는데 사창에는 햇빛이 비치고 있네 머리 숙여 손길 가는 데로 맡긴 채 구슬 같은 눈물이 실과 바늘을 적시누나 매창은 유희경과 서로 떨어져 있기에 바느질을 하거나 나무를 보면서 그리움을 시로 남겼다.

이詩는 옷을 꿰매면서 문득 떠오른 그를 사무치게 그리워서 눈물을 흘리며 남긴 시로 유희경을 향한 애절한 마음이 배어있는 연시이다.

계랑을 그리워하며(哀桂娘) "유희경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나의 집은 서울에 있어 서로 그리움 사무쳐도 못보고 오동나무에 비뿌릴 젠 애가 끊겨라. 그녀를 그리워하기는 유희경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았다. 그도 시간이 갈수록 부안에 있는 매창이 그리워 시를 지었다.

전설에 의하면 내소사(來蘇寺) 경내에 유희경이 그리워하던 벽오동이 심어졌다고 하는데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벽오동이 있긴 있다. 1590년에 처음 만나 사랑을 하던 두 사람은 1592년 봄, 내소사를 구경하며 내려오던 길에 임진왜란 소식을 접하게 되고 재회의 기약 없이 이별하게 된다.

유희경은 전쟁을 맞아 의병을 일으키는 등 바쁜 틈에 매창을 다시 만날 여유가 없게 된 것이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진정 마음이 통했던 연인을 떠나보낸 매창은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고 그 후 쓰인 그의 시들은 님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서 서러움과 한을 드러내고 있다.

매창은 그와 헤어진 뒤 마음의 정을 주는 사람이 없이 그만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1601년에 허균이 충청도와 전라도의 세금을 거둬들이는 해운판관이 되어 호남에 내려와 부안에 들렸다가 그녀를 만나게 된다. 이때 허균의 나이 33세, 매창은 29세였다. 허균이 말하기를 “기생 계생은 거문고를 끼고 와서 시를 읊었다.

비록 생김새는 드날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재주와 정취가 있어 함께 얘기를 나눌만 하였다. 하루 종일 술을 나누어 마시며 서로 시를 주고받았다. 저녁이 되자 계생은 기생인 자기의 조카딸을 나의 침실로 보내주었으니, 곤란한 일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당시 허균은 여자 관계에서도 유교의 굴레를 벋어 던진 사람으로 여행할 때마다 잠자리를 같이한 기생들의 이름을 그의 기행문에 버젓이 적어놓기도 하였다.

그러한 그가 매창과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고 정신적인 교감만을 가진 것은 매창이 비록 천한 기생이었지만 똑같은 인간으로 대우하였고, 더구나 매창의 시를 좋아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허균이 매창을 처음 만난 순간에 27세에 죽은 누나 허난설헌을 떠올렸을 거라는 말도 있다.

허균의 “성소부부고”에 매창에게 보낸 두편의 편지와 함께 전해지고 있는 글인데 “계생은 부안의 창기라 시에 밝고, 글을 알고 노래와 거문고을 잘한다. 그러나 절개가 굳어서 색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그 재주를 사랑하고 정의가 막역하여 비록 담소하고 가까이 지냈지만 어지러운 지경까지는 이르지 않았으므로 그 사귐이 오래가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허균은 1601년 7월 23일에 부안에 왔다가 그해 12월에 서울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돌아가서도 매창을 항상 그리워한 것이 그의 편지에 잘 드러나 있다. 1609년 9월 계랑에게 봉래산의 가을빛이 한창 짙어가니, 돌아가고픈 생각이 문득문득 난다오. 내가 자연으로 돌아가겠단 약속을 저버렸다고 계랑은 반드시 웃을 거외다.

우리가 처음 만난 당시에 만약 조금치라도 다른 생각이 있었더라면, 나와 그대의 사귐이 어찌 10년 동안이나 친하게 이어질 수 있었겠소. 이젠 진회해(秦淮海)를 아시는지. 선관(禪觀)을 지니는 것이 몸과 마음에 유익하다오. 언제라야 이 마음을 다 털어 놓을 수 있으리까. 편지 종이를 대할 때마다 서글퍼진다오.

매창에 대해 연인이 아닌 진정한 친구로서의 우정을 간직한 허균의 마음을 이 편지에서 잘 엿볼 수 있다. 1609년 가을에 보낸 이 편지를 마지막으로 이듬해인 1610년 여름에 매창은 38세의 나이로 죽게 된다.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 -허균 아름다운 글귀는 비단을 펴는 듯하고 맑은 노래는 머문 구름도 풀어 헤치네 복숭아를 훔쳐서 인간세계로 내려오더니 불사약을 훔쳐서 인간무리를 두고 떠났네 부용꽃 수놓은 휘장엔 등불이 어둡기만 하고 비취색 치마엔 향내 아직 남아있는데 이듬해 작은 복사꽃 필 때쯤이면 누가 설도(薛濤)의 무덤을 찾으리 10년 동안 친하게 벗하던 매창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허균은 이를 슬퍼하며 한차례 눈물을 뿌리고서 지은 두편의 시중 한편이다.

허균과 매창과의 이야기는 깊은 정감이 있으면서 청아하게 느껴진다. 유희경도 매창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안에 오게 된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매창의 상여가 아무래도 움직이지 않다가 유희경이 도착하여 받아주지 못했던 매창의 사랑을 슬퍼하며 그의 두루마기를 벗어 상여에 덮어주자 비로서 상여가 움직였다고 한다.

매창이 죽고 60년이 지난 후에 전해지던 57편의 시를 모아 엮어서 <매창집>이 만들어졌다. 당시에 최초로 여성의 시가 시집이 만들어져 나온 것이다. 그가 살던 시절, 이름 하나 얻지 못하고 평생을 살다간 여인이 태반인데 번듯하게 묘를 가지고 40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후대의 보살핌을 받는 이매창, 시와 거문고를 통해 그녀가 불사른 예술 혼이 진정 오늘까지 전해져오고 있다. 고등학교 때 매창의 시조를 배웠지만, 이번 답사를 통해 매창의 시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됨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文京花<韓中文化交流會理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