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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계속되는 삼복을 지난 19일부터 맞고 있다. 그 삼복중에 먹었던 여름 시식(時食)은 다양했다. 18~19세기 무렵에 지어진 우리나라 세시기(歲時記)들에 적힌 복중 시식만도 대여섯 가지나 된다. 한데 그중에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복날 시식의 대종을 이루고 있는것은 개장국이다. "삶은 개고기에 파를 듬뿍 넣어 다시삶아낸 것을 개장이라 한다.

여기에 닭고기나 죽순을 넣으면 한결 맛이 좋아진다. 개장에 후추를 쳐 흰밥을 말아먹고 땀을 흠뻑 쏟고나면 더위를 쫓고 보허하는 효험이 있다. 그래서 성안에서도 많이 판다"라고 '동국세시기'에 나와있다.

그런데 20세기 초 한성(서울의 옛이름)의 반가(班家)에선 육개장·삼계탕을 끓인다. 이보다 더 행세깨나 하는 집안에선 민어 잔치가 벌어진다. 전남 목포 등에서 흔해 아무나 먹고있는 민어를 왜 하필이면 민어냐고 하겠지만, 잡히자마자 그자리에서 바로 죽어버리는 성질급한 민어를 바닷가가 아닌 서울에서, 그것도 한여름에 먹자니 비쌀 수밖에 없었다.

옛 개성 양반이 '복달임(복날에 그해의 더위를 물리치는 뜻으로 고기로 국을 끓여 먹는 풍습)'으로 임자수탕을 즐겼다면 서울 양반은 민어요리에 탐익했다. 큼직한 민어 한 마리를 올려놓고 회를 뜨거나 찜·탕을 끓여 푸짐하게 먹었다.

지금도 "복더위에 민어찜은 일품, 도미찜은 이품, 보신탕은 삼품"이란 말이 전해진다. 더위에 지친 기력을 회복시키는 데 도미나 보신탕보다 오히려 낫다는 뜻이다.

민어는 초여름이 제철이다. 다 자라면 길이 1m남짓, 무게 15~20kg에 달할 만큼 기골이 장대한 어종이다. 비늘이 두껍고 커서 요리하기도 편하다. 비린내가 없고 맛이 담백하기로 유명하다. 흰살생선 중에서 맛좋기로 소문난 도미·참조기도 민어 앞에선 꼬리를 내릴 정도다. 그래서인지 제사상·혼례상 등 잔칫상엔 으레 민어가 한가운데를 차지한다.

다산 정약용의 형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민어를 "입과 비늘이 크며 맛이 달다. 익히거나 회로 먹는다"고 기술했다. 또 허준은 「동의보감」을 통해 "살이 후해서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살은 생선 중에서 가장 소화·흡수가 잘돼 어린이의 발육을 돕고 노인이나 큰 병을 치른 환자의 건강 회복에 유익한 생선"으로 평가했다.

민어는 비늘 외엔 버릴게 없다. 껍질과 알도 밥과 함께 먹으면 찬사가 절로 나온다. 이렇다보니 "날껍질에 밥 싸먹다가 논 팔았다"는 식담까지 있다. 껍질을 말려서 튀겨 먹기도 한다. 심지어는 부레(공기주머니)도 다양하게 이용된다.

관절 건강과 피부 탄력에 유익한 젤라틴·콘드로이틴 성분이 들어있고 접착력이 강해서다. 옛 사람들은 민어 부레로 젓갈을 담그거나 삶아서 기름소금에 찍어 먹었다.

'가보'라는 음식의 재료로도 사용했다. 민어 부레 속에 소(쇠고기·오이·두부 등)를 넣고 삶은 뒤 둥글게 썬 일종의 생선 순대가 '가보'다. 우리 선조는 또 민어 부레를 끓여서 만든 민어풀을 강력 접착제로 쓰기도 했다.

민어풀로 붙이면 '천년은 간다'고 여겼으며 실제로 고가구·자개농(라전 칠기장)·합죽선 등의 제작에 사용했다. 민어는 회·구이·찜·탕·전·산적 등 다양한 요리가 가능한 생선이다.

토막 낸 민어는 갖은 양념과 함께 냄비에 넣고 고추장으로 간을 해 얼큰하게 끓인 것이 민어 매운탕이다.

이런 민어는 서해안에서 잘 잡히던 생선이다. 지금은 신안 임자도, 무안 도리포 등 일부에서 겨우 명맥만 유지할 정도로 어획량이 줄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좋은 여름식품 등을 뒤로하고, 몸보신 한다고 절규하는 개를 잡아 많은 사람들이 먹고 있다.

구탕집이 어느때부터 보양탕 집으로 이름이 바뀌기까지 했다. 아마 서양인들이 한국에 많이 들어오면서 야만적이라는 그들의 비판을 피하는 이름일 것이다.

고운석<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