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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운주사에서 며칠을 보냈다. 운주축제(5.20∼5.22)에 손을 넣어주기 위해서였다.

그 축제에서는 매년 한 쌍이 전통혼례를 한다. 이번에도 한 쌍의 부부가 탄생했다. 몇 번 다니는 동안 누가 결혼 하는지만 알았을 뿐인데 이참에는 아는 분이 결혼을 한다고 한다.

바로 이 동네의 목수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김정일 위원장이다. 위원장이라고 말하는 것은 저 북쪽에 있는 사람과 이름이 같기 때문에 동네에서 붙여준 별명이다. 성격이 워낙 유순해서 동네의 궂은일은 도맡아 처리한다. 간혹 그를 놀려대는 말투로 ‘칙간목수’라고 하면 그는 무척 화를 낸다. 그간 지은 집만 해도 몇 채인데 놀린다고 화를 낸다.

그 동네의 면사무소에 근무하다 지금은 퇴임한 조금택 계장이 현직 시절 도암면만의 고유한 민속을 발굴하고 전승하기 위해 집짓는 과정을 놀이로 엮어 ‘도암 집짓기 놀이’를 만들었다.

그 때 그 놀이에 소용되는 모든 재료를 이동하기 쉬우면서 지속적으로 보관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이도 이 목수이다. 그 전에는 운주사 뒤편 초막집을 복원해 주기도 했고, 나무꾼 지게놀이의 배경이 되는 재료를 다 만들어 내기도 했다.

흔히 사람 좋은 사람이 그렇듯이 그 또한 무지하게 술을 좋아한다. 한번은 민망할 정도로 많은 술을 마시고 집짓기 놀이에 참여했다가 비틀거려 집을 못 짓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여튼 그 양반이 결혼을 한다니 좋아 죽겠는데 하필 기상이 도와주지 않는다. 전국 일원에 비가 내린다고 하고 바람도 심하다고 하는데 그 날이 이 분의 혼례 날이다.

어쩌랴. 다른 프로그램이야 올리지 않으면 되지만 그분의 결혼식은 오십도 넘은 나이에 이뤄지는 것인데, 기어코 치러야 할 대사 아닌가.

하여 마을 번영회장님과 유지들은 ‘날이 좋아지기’만 하늘에 기원하며 그 날을 맞았다. 5월22일 오시, 드디어 초례청을 차렸다. 밤새 내리던 비는 잠시 소강상태.

오십 넘은 나이에 이뤄진 혼례는 마을 축제가 되고 함진아비가 나온다. 목수와 또래가 되는 친구가 나섰다. 아주 오랜만에 하는 일임에도 한 치의 주저함이 없다.

한 발 나설 때마다 돈과 술을 요구하고 때론 여인을 요구하기도 한다. 얼굴은 오징어로 무장하여 대저 누구인지 모를 터인데 모르는 사람이 없다. “아따 땡깡(떼)그만 부리고 빨리 갖다 줘라”고 난리법석이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목안과 등에 진 예장함을 기다리는 신부 가족의 애절함에 모두 이구동성의 의사표시를 한 것이다.

면장님이 나서고 번영회장님이 나서고 농악단 단장님, 조합장님이 나서서 돈봉투를 길에 놓는다. 것도 그냥 시멘트 다리처럼 연이어 놓는 것이 아니라 징검다리처럼 띄엄띄엄 놓는다. “왜 돈을 그렇게 띄엄띄엄 놓소?”라고 한마디 하면 “얀마! 옛날에 시멘트 다리가 있었다냐. 다 징검다리지”라고 응수하면서 드디어 등짐과 기러기를 내려놓는다.

이제 함진아비는 사라져야 할 참이다. 두 가지를 뺏긴 함진아비는 그 자리에서 더 이상의 역할이 필요 없게 된다. 드디어 번영회장님의 집전 하에 결혼식이 이뤄진다. 경건하면서도 시종 여유를 잃지 않는 김정일씨, 드디어 새 신랑이 되었다.

행사를 집전한 유사들이 한데 모여 사진을 찍고, 신랑신부의 가족들이 모여서 함께 사진을 찍고, 우인들이 한데 모여 사진을 찍고, 클라이맥스는 신랑이 신부를 등에 업으면서 마치게 되었다. 주변에는 술과 돼지고기가 돌아간다. 이 날을 맞아 돼지 한 마리를 잡았다고 한다. 도암면 주조장에서 만든 막걸리와 부녀회에서 만든 두부와 물컹하게 삶은 돼지고기, 이 삼박자가 어울려 흥겨운 잔치마당이 펼쳐진다.

그 잔치 끝나니 는개가 보슬비로 점차 소나기처럼 퍼붓는다. 이 정도면 대박이다. 축제장에 찾아온 사람들의 온갖 칭송은 다 듣고 혼례를 올렸으니 말이다.

그렇게 혼례를 마치고 오후가 되어 빗방울이 더욱 거세지는 데도 마을사람들은 축제장을 떠나지 않는다. 두 시부터 시작하기로 한 ‘나무꾼 지게놀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가 거세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게놀이를 한다.

축제는 지역문화 전승의 계기이자 지역 활로 모색의 장이라 여기는 이들은 스물다섯 명의 출연자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지역 현실을 알면서도 출향인사들이라도 함께 참여해서 이 판을 이어가자고 다짐했던 터였다.

오늘 혼례를 올린 김정일씨, 어느새 옷 갈아입고 또 이 자리에 참여했다.그가 없으면 재미가 없다는 것을 주민들은 모두 잘 안다. 소고를 들고 흥에 겨워 춤사위를 이어가는 그 모습에 모두들 박장대소를 하며 좋아한다.

화순군 도암면의 김정일씨, 쉰 넘어 새색시 얻었다. 화순 운주사에 또 하나의 불상이 생겨났다.

제공/전라도 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