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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이가 4~50대인 어린시절까지만 해도 추석 무렵 벼가 익으면 농촌의 아이들은 빈 자루를 허리춤에 차고 메뚜기 잡으러 들판으로나갔다. 하지만 그 메뚜기잡이에는 해서는 안되는 금기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등에 새끼를 업은 메뚜기는 잡아서는 안되며, 만약 잡으면 어머니가 빨리 죽는다고 알았던 것이다. 한낱 곤충까지 투사(投射)된 한국인의 화끈한 휴머니즘이 아닐 수 없다. Y자형의 고무새총으로 참새를 노릴 때 한쪽 눈을 감고 조준을 한다.

그 조준반경 속에 다른 참새가 들어와 있으면 노렸던 새를 쏴서는 안된다는 금기가 역시 상식화돼 있었다. 왜나하면 다른 참새는 노렸던 참새의 어미나 새끼이거나 각시참새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통 휴머니즘은 이처럼 동물에게만 베풀어졌던 것이 아니라 식물에까지도 미치고 있었다. 콩나물을 다듬을 때 콩나물의 목을 자르면 시집가서 소박맞는다는 금기가 있었다. 콩나물의 목까지도 자르지 못하게 하는 이런 풍토에서 자란 우리 한국인의 생명존엄이나 인간존엄은 이데올로기로서 휴머니즘을 떠벌려대는 서양사람들의 그것에 비해 원천적이고 본질적인 것이다. 한데 참새도, 메뚜기도, 콩나물도 아닌 사람이 추석을 앞두고 자살자가 늘고 있다. 어려운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어린 자식과 함께 목숨을 끊기도 한다.

추석이 부자들과는 달리 서민들에겐 이렇게 비극을 낳기도 한다. 이때문인지 이 세상 사람 모두가 한국사람처럼 둥근 달을 아름답고 멋있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유럽에서는 달이 찰수록 사람의 지혜가 시드는 것으로 알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오델로>에서 주인공이 발광하는 시기를 보름달이 찰 때로 잡고 있다. 유럽에서의 둥근 달은 이처럼 저주스러운 것이다. 몽고사람들도 보름달을 매우 싫어하여 추석날 밤이면 문을 닫고 외출까지 하지 않는다.

중국사람들은 중추(仲秋)날 밤 시식(時食)으로 수박을 먹는데 수박씨앗을 한 톨만 남겨놓고 모조리 까먹는 습속이 있다. 이 습속에 대해 몽고사람들은 몽고민족의 마지막 한 사람만 남겨두고 모조리 멸망하도록 저주하는 행위라 해서 추석날 밤을 몹시 싫어한다. 케냐에서는 남편에게 얻어맞고 눈두덩이가 퉁퉁 부은채 달로 쫓겨난 악처(惡妻)가 이 보름날 밤에 주력(呪力)을 부려 보복을 하는 날이다.

이에비해 한문문화권에서는 보름달, 특히 가장 크고 밝은 팔월 보름달을 반기고 숭상한다. 중국사람들은 이날 밤 월병(月餠)과 수박으로 달에게 제사를 지내고, 일본사람들도 갈대같은 가을풀과 둥근 떡을 차려놓고 달맞이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명절무드나 축제무드는 없다. 우리나라의 많은 명절이 중국에 뿌리를 두고 한문문화권에 공통되고 있으나 오로지 이 추석 명절만은 우리나라 독자적인 명절로 새삼 각광을 비쳐야 할 주체적 명절인 것이다. 그 연유에 대해서는 많은 이설(異說)이 있다. '가락망국일설(駕洛亡國日設)'-. 신라가 가락국을 병합한 후에 그 유민들이 망국의 설움을 달래기 위해 이 망국의 날에 시조제(始祖祭)를 지내고 풍악을 잡았는데 그게 추석의 기원이라는 것.

'발해전승일설'-. 당(唐)나라의 신라인촌(新羅人忖)에서 추석 명절 쇠는 것을 본 일본 고승(高僧) 원인(圓仁:엔진)이 "이 날을 명절로 삼은 것은 오로지 신라만의 풍속으로 신라 노승들이 말한 바를 들었더니 신라가 발해와 싸워 이긴 날을 기리기 위해 시작됐다"고 견문기를 남기고 있다. 그밖에 신라사람들이 연중 닦은 무예와 베짜기를 시상하는 날이 추석의 뿌리라는 설 등 여러 설이 있으나 삼한(三韓)시대부터 있었던 농공필, 곧 추수감사의 제전이 그 뿌리일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시되고 있다.

한데, 이런 추석이 코앞이지만 올해는 농민들의 마음이 편치가 않다. 이렇다보니 전국 '쌀 농가 비상총회'는 비료값·농자재가격 상승 등에 발맞춰 쌀 농가에게 최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7만 원 쌀값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농민들이 제안한 7만 원이란 값은 현재 5만원 대인 40kg 한 가마 쌀값을 6만 원으로 올리고 한 가마당 4천여 원 지급되는 직접지불금을 1만 원으로 인상시킴으로써 가능하다.

인상 근거는 기름값 폭등과 원자재값 폭등에서 찾고 있다. 여기에 이양기, 콤바인, 트랙터 빌려쓰는 값도 크게 늘어서다. 따지고 보면 농민들만 그런게 아니다. 직장인들도 마찬가지다. 월급은 그대론데 천정부지 오른 물가에 차례상과 부모님 선물 등 이것저것 들어갈 추석 경비를 생각하면 걱정부터 앞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존엄, 생명존엄만은 추석 보름달처럼 영원하길 바란다.

고운석<시인. 무진주문화마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