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프린트하기

2005년 8월 19일 (금) 10:00 미디어다음

야생오리 100마리와 함께, ‘그림 같은’ 전원생활

매일 오리 떼에 물 적신 바게트로 저녁 주는 프랑스 센강 변의 노부부

“찾아오는 오리들은 모두 12가족, 아기 오리 부쩍 자라는 모습 흐뭇”

미디어다음 / 김미소 프랑스 통신원

프랑스 센강 상류 지역의 보드센은 파리에서 거주하다 은퇴하고 노후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다. 강변을 따라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는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아직 해가 지지 않은 18일 오후 7시(현지시각) 오리들이 떼를 지어 보드센의 한 전원주택 정원으로 들어간다. 대장으로 보이는 몇몇 오리가 ‘꽥꽥’ 소리를 내자 나머지 오리들도 그 소리를 따라하며 정원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 오리들은 강 부근에서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야생오리들이다. 그러나 이 오리들은 저녁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이 집에 찾아와 저녁을 먹는다.

이 전원주택의 주인은 에릭(58)과 마리안(54) 부부다. 두 사람은 오리들이 정원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면 창고에 가서 준비해둔 음식을 가지고 나온다.

오리들의 저녁은 물에 말아 놓은 바게트 빵이다. 마리안은 ‘왔어요, 왔어’라는 말로 오리를 반기며 정원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그릇에 빵을 나누어 담는다.

오리들은 차례차례 주둥이를 그릇에 대고 빵을 먹기 시작한다. 에릭과 마리안은 두 사람 곁에 다가온 오리에게 물에 젖은 빵을 직접 먹여주기도 한다.

부부의 정원은 순식간에 야생오리 100여 마리로 가득 찬다. 저녁 시간의 이 집 정원은 저녁 식사를 마친 오리, 뒤늦게 도착해 밥 달라고 소리를 내는 오리 등으로 부산해 오리 농장을 연상시킬 정도다.

식사를 시작한 지 20분쯤 뒤 오리들은 저마다 배를 채우고는 센강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한다. 한참을 줄지어 서서 강을 바라보던 오리들은 차례로 강물에 몸을 던지고 강가를 따라 헤엄치며 이동한다.

에릭과 마리안은 지난 6월 50년 동안 살던 파리를 떠나 이곳으로 이사 왔다. 여성의류 매장의 점원으로 일하던 마리안의 건강이 나빠지자 두 사람은 전원생활을 계획하게 됐다. 가죽 공장을 운영하던 남편 에릭은 사업규모를 줄였다. 도시 생활을 접고 부부가 자리 잡은 곳은 센강이 눈앞에 펼쳐지는 아담한 전원주택이었다.

원래 이 주택은 에릭의 부모가 40년 전에 사 놓은 별장이었다. 에릭의 부모는 이 주택을 주말 별장으로 이용하다가 노년에는 아예 자리를 잡고 살았다.

오리들에게 처음 밥을 준 것도 에릭의 부모였다. 에릭의 부모는 이곳에서 지내며 집 앞을 지나는 오리들에게 먹을 것을 던져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두 번씩 음식을 주자 오리들은 어느 순간부터 일정한 시간에 그의 집 정원으로 몰려들었다. 심지어 오리들은 정원에 들어서며 자신들이 도착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이처럼 오리와 인연을 맺은 에릭의 부모는 4개월 전부터 오리에게 밥 주는 일을 아들 에릭과 며느리 마리안에게 맡겼다.

밥을 주는 사람은 바뀌었지만 오리들은 요즘도 변함없이 저녁시간이 되면 이 집 정원을 찾아와 식사를 하고 돌아간다. 부모가 맺은 오리와의 인연을 자식들이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에릭은 “대를 이어 오리들에게 저녁식사를 주는 것이 이곳에 사는 가장 큰 기쁨”이라며 “이제는 우리도 오리와 친한 친구가 됐다”고 말했다.

오리들에게 매일 저녁을 주고 있지만 시간이나 돈이 많이 들지는 않는다. 마리안은 “바게트 빵을 물에 말아 주고 있기 때문에 힘들지 않다”며 “빵은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동네 제과점 주인에게 부탁해서 잘못 구워졌거나 판매기한이 지난 것들을 무료로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이 오리와 항상 함께하다 보니 두 사람은 이제 오리 전문가가 다 됐다. 이제는 어떤 오리가 아빠 오리이고 엄마 오리인지, 100여 마리의 오리들이 몇 가족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다 알고 있다.

에릭은 “우리 정원에 찾아오는 오리들은 모두 열두 가족으로 이뤄져 있다”며 “얼마 전에 태어난 아기 오리가 요즘 들어 부쩍 자라고 있어 보고만 있어도 아주 흐뭇하다”고 말했다.

두 부부도 오리들이 어떻게 이 집을 알고 매일같이 찾아오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오리가 태어나자마자 처음 본 대상을 어미로 알고 모든 행동을 따라하는 것처럼 아기 오리들이 부모를 따라 매일 저녁식사를 하러 오던 장소를 기억하고 꾸준히 찾아오는 있는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마리안은 “매일 저녁 7시가 되면 오리가 도착했는지 창문 밖으로 확인한다”며 “오리들이 우리집 정원에 놀러와 밥먹고 휴식을 취하다 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에릭은 “비가 많이 오는 날에도 오리들은 때가 되면 어김없이 정원을 찾아온다”며 “이럴 때는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앞으로도 오랫동안 오리들과 함께하는 전원생활을 즐기고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