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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를 상징하는 유형물로는 무등산이 단연 으뜸이고, 무등산의 절경은 근래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된 주상절리대인 서석대·입석대·규봉암의 3대 기암과 그 벗들이 무너져 쌓인 장엄한 너덜겅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서석’을 가끔 들어 낯익고, 전남대 온 뒤 서석도 오르고 무등산 옛 이름이 서석산인 줄은 알았으나, ‘서석’의 말뜻은 몰랐다.

올 4월 규봉암에 들른 인연으로, ‘규봉(圭峰)’의 본뜻을 밝히고자 자전을 찾았다. 물론 ‘규봉’이 중국 지명이며 당나라 때 유명한 종밀(宗密)선사가 머문 곳이란 역사는 알았고, 아마도 의상대사가 절을 창건하면서 그 이름을 따왔을 거라고 어렴풋이 추측만 해왔다.

그 관계를 밝히면 뭔가 좀 드러날까 기대했는데, 자전에서 ‘규(圭)’자를 찾으니 서석의 신비까지 너무 싱겁게 풀렸다.

‘圭’는 본디 ‘상서로운 옥(瑞玉)’의 뜻인데, 고대 중국에서 천자가 공후백자남(公侯伯子男)의 오작(五爵)을 봉할 때 신표로 내려, 귀족이 천자를 알현하거나 가묘에 제사지낼 때 손에 쥐고 들어가는 옥으로 만든 신분증을 가리킨다. ‘서(瑞)’ 자체도 본디 옥으로 신표를 삼는 걸 뜻하니, 결국 ‘圭’는 ‘瑞’와 같은 뜻으로, 후대 벼슬아치들이 임금을 뵐 때 쥐(차)는 홀(笏)의 전신이다.

옛날 봉건 귀족은 워낙 존귀한지라 ‘옥’으로 만든 ‘圭’를 썼는데, 나중에 벼슬아치들은 수도 많고 직위도 낮아져 대(竹)로 만든 ‘홀’로 바꿔 쓴 것이다.

근데 ‘규’의 모습을 보면 비밀은 쉽게 풀린다. ‘圭’는 위는 하늘을 본떠 둥글게 다듬고 작위에 따라 여러 무늬를 새기고, 아래는 땅을 본떠 네모지게 만들어, 자연의 모습과 음양의 시작을 상징한다.

천자의 형제나 삼촌인 공작(公爵)은 궁실 모습을 새긴 9치(寸) 길이의 환규(桓圭)를 쥐고, 후작과 백작은 각각 사람 몸 모습을 새긴 신규(信圭)와 궁규(躬圭)를 쥐는데 똑같이 길이가 7치며, 자작은 곡식을 새긴 5치의 곡벽(穀璧)을 쥐고, 남작은 부들을 새긴 5치의 포벽(蒲璧)을 쥔다.

엄격히 말하면, 규는 공후백작까지만 뜻한다. 이 옥 막대기가 주상절리대로 오륙각 기둥 모습을 띤 서석·입석·규봉과 아주 비슷하게 생겼다.

'규봉’은 중국 시안(장안) 남쪽 종남산에 있는 봉우리로, 그 모습이 ‘圭’처럼 생겨 붙인 이름인데, 당의 유명한 고승 종밀선사가 이 산에 주석해 규봉대사라 부른다. 당에 유학한 의상대사도 틀림없이 규봉에 들렀을 것이며, 이곳 무등산에 절을 지으면서 ‘圭’처럼 생긴 주상절리대를 보고 규봉을 본떠 이름짓지 않았을까? 의상대사가 화엄경의 핵심요지를 210자로 간추려 ‘법성게(法性偈)’를 지었고, 규봉의 종밀선사가 화엄종의 제5대조인 사실은, 결코 우연치 않은 묘한 인연이다.

3대기암 중 다른 하나는 ‘圭’의 뜻풀이인 ‘서옥(瑞玉)’에서 ‘옥’을 ‘돌’로 바꿔 서석대라 부르고, 입석대는 하는 수 없이 가장 흔한 ‘선돌’이란 이름을 쓴 게 아닐까? 서석대와 입석대는 하늘(님)이 빛고을 광주에 특별한 작위를 봉한 신표로 세워지고, 빛고을이 하늘을 향해 영광의 상징으로 내민 신표가 아닐까? 그렇다면 규봉암은 도량의 창건자 의상대사가 후대 수행자들한테 부처님의 자비광명을 닦아 펼치라고 당부하는 신표로서 이름지은 게 아닐는지?

김지수 전남대 법대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