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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이이의 <성학집요>는 진차(進箚), 곧 임금에게 이 책을 올리는 뜻을 담는 글로 시작된다. 말하자면 헌사인데, 그런 유의글에 흔한 아부와 찬양이 아니라 직설적인 비판과 충고다. "임금의 문제점을 말씀드리면, 영특한 기질을 너무 드러내려고 하여 선한 것을 받아들이는 도량이 넓지 못하고, 쉽게 화를 내어 남을 이기기 좋아하는 사사로운 마음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온순한 말과 겸손한 말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임금을 거스르게 됩니다." "(누군가를) 편파적으로 두둔하고 지적하면 언성을 높여 도리어 더 편파적으로 두둔하려는 뜻을 보이십니다." 요즘으로 보면 '정동기 감사원장'에 반대해도 MB의 독 귀닫는 모습 등이다. 율곡은 이는 '세왕의 도'가 아니며, 그 폐단은 '전하 때문'이라고 못박았다. 조선시대 문신인 최만리(?~1445)는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한 사대주의 인물로 인식된다.

그는 한문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중국 문화와의 단절 등을 염려했다. 이는 지금의 잣대로는 이해하기 어렵겠으나 당시의 시대상황을 감안한다면 지식인으로서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생각이라 하겠다.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최만리는 청백리로 꼽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인조반정 참여 공신인 최명길(1586~1647) 또한 우리에게 그다지 좋은 이미지로 남아있지는 않은 것 같다.

병자호란 직전 전쟁불사를 외치는 척화파에 의해 간신(奸臣)으로 매도당하기도 했던 사실이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라의 안전을 먼저 생각한 그는 주화파로서 청나라와 화의를 주장했다. 청의 심기를 건드릴 경우 전쟁의 참화를 입게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명길은 척화파의 주장이 거세지자 청과 싸우겠다는 결심이 진정으로 확고하다면 군대를 이끌고 압록강까지 나아가자고 촉구해 그들의 위선을 꼬집었다. 당시 대다수 신료들은 전쟁이 터지면 강화도로 피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었으니, 이윽고 청군이 쳐들어오면서 강화도 길마저 막힌 임금(이조)이 포로로 잡힐 위기에 빠졌다. 하지만 강경책을 주문했다. 신료들 중에는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바로 그때 최명길이 청군 진영에 들어가 침략해온 까닭을 따지면서 시간을 끌어보겠다고 했다. 애초 전쟁을 막으려다 '간신'이 되어버린 그가 실제로 전쟁이 터졌을 때는 가장 먼저 임금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나선 것이다. 역사엔 최명길처럼 직언하는 위인만 있는게 아니다.

한나라 원제가 즉위 직후 저명한 학자 우공을 불러 나랏일을 물었다. 당시 현안은 외척과 환관의 전횡이었지만, 우공은 이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신 검소하게 생활하라는 말만했다. 본디 검소했던 원제에겐 필요없는 충고였으나, 나름대로 능란한 처세술이었다. 간의대부는 황제에게 의견을 내는 자리다.

그는 가벼운 문제만 골라, 그것도 한참 뒤에야 '뒷북치는' 말만했다. 웃음거리가 되긴 했어도, 나름의 생존전략이었다. 지금 우리는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 이후 조선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매파와 비둘기파로 나누어 서로를 비방하며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 병역 미필인 한나라당의 안상수 대표는 전쟁이 나면 군대에 입대하겠다고 기염(?)을 토하더니, 연평도에 가서 불에 그을린 보온병을 포탄이라고 말해 웃음거리가 됐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을 외치는 강경파가 됐든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는 온건파가 됐든 그래 다 좋다. 6·25한국전쟁 때 아군과 적군을 비롯, 민간인을 포함하면 사망자가 6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한데 북한의 지렁에 춤추는 친북자파들의 선전에 넘어가 전쟁 전후의 상황을 제대로 알기나 하는지 묻고 싶다. 이런 상황에서 최명길 같은 진정한 애국자는 누구인가. 필자가 보기엔 '위장 평화' 꼼수에 속지만 않해도 애국자의 반열에 설 수 있다.

고운석<시인. 무진주문화마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