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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공(太公)이 말하기를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어둡고 어두운 밤길을 가는것과 같으니라"고 하고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능하면 많이 배우려 든다. 밤잠을 줄이면서까지 공부라는 경쟁에 뛰어들어 출세의 반열에 들려한다.

이는 옛날에도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더 심했다고 봐야할까. 조선시대 과거급제는 일신의 영광이요, 가문의 영광이었다. 이렇다보니 재수·삼수는 기본에 속하고 평생 매달리기도 했다.

최고령 급제는 성종 20년(1489) 문과의 김효응으로 당시 76세였다. 성종실록은 '김효응에게 높은 품계를 제수하고 의식을 하사하다'고 적었다. 그러나 그는 평생꿈을 이루었지만 정작 꿈을 펼칠 시간이 없었다. 급제 이듬해 숨을 거둔 것이다.

퇴계 이황도 소과(小科)에서 세번 떨어졌고, 이항복도 진사시에 낙방해 성균관 청강생으로 5년을 공부한 후 알성(謁聖)문과에 급제한다. 그래 장원급제라도 하면 온 장안이 떠들썩 했다. 홍패에 어사주, 어사화 꽂고 사복마(司僕馬)에 오르면 천하를 얻은 기분이렸다.

한양가(漢陽歌)에 "아침에 선비러니 저녁에 선달이라, 화류춘풍(花柳春風) 대도상에 세마치 길군악에 무동은 춤을추고 벽제소리 웅장하다"는 대목이 나온다. 바로 '유가(遊街)를 묘사한 것이다. 금의야행(錦衣夜行)이라 했다.

비단 옷 입고 밤에 다니면 누가 알아주나, 항우(項羽)도 그럴진대 여느선비랴. 온동네 지랑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 진사시·한성시·별시에 식년 문과까지 아홉차례나 장원한 율곡 이이의 삼일유가(三日遊街)는 이해가 된다.

그런 유습일까 입시나 고시철이면 중·고교와 대학캠퍼스에 '축 합격' 플래카드가 난무한다. 중학교엔 '특목고 ○○명 합격', 고교엔 '△△대 ○○명, ××대 ○○명' 플래카드다. 합격생 이름까지 쭉 나열한다. 중·고교가 나서서 학벌주의를 조장하는 셈이 아닌가. 대학가는 차라리 재기발랄하다.

'○○합격, 얼굴 빼고 다 이루었네' '기다렸다 ○○, 나와 결혼해줘'식이다. '합격=성공'이란 인식은 '학번'에도 나타난다. 금년 대학 신입생은 '11학번'이다. 아마 '젓가락 학번'으로 불릴지 모르겠다. 미국은 '클래스 오브 2015'다. 졸업연도가 학번인 셈으로, 입학보다 졸업에 방점을 찍는다.

우리는 입학이 곧 졸업이니 차이가 없겠지만, 전남·강원에 이어 서울도 고교에 '합격 플래카드'가 사라질 전망이다. 상급학교 진학자와 미진학자, 명문 합격자를 구분함으로써 학력과 학벌을 이유로 학생을 차별한다는 이유다.

조선시대 과거가 양반의 기득권 유지수단이라면, 현대의 입시도 비슷해졌다. 이때문에 진보성향의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지난 10월 취임후 첫 해외출장에 나선 곳이 핀란드다. 광주·전남·강원교육청 등 진보 교육감들이 당선된 지역의 공무원들도 최근 줄줄이 핀란드 탐방을 다녀왔다.

세계 최고의 학업성취도를 자랑하는 핀란드 교육에서 시사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진보진영 교육계 인사들에겐 특히 그렇다. 핀란드 교육의 기본방향이 경쟁보다는 교육기회를 모든 학생이 평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핀란드 교육을 배우려는 노력과 관심을 중국 상하이로 돌려야 할 상황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12월 14일 공개한 '2009년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상하이가 읽기·수학·과학 전 영역에서 1위를 차지했다. 1978년부터 영재교육을 시작한 중국은 지역별로 우수학생이 모이는 중점학교를 선정해 차별화된 교육을 한 결과다. 한데 한국 교육은 중국과 거꾸로 가는 형국이다. 상하이 교육은 우리교육에 '경쟁력이냐, 평등이냐'를 묻고있다. 한데 한국의 교육현실과는 거리가 먼 핀란드 교육을 바라보며 평등교육과 형평성만 고집하다간 한국교육이 무너질까 걱정된다.

고운석<시인. 무진주문화마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