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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호 가옥, 양승수 가옥, 양회두 가옥 등 100년이 넘은 고택들이 많은 마을이라 해서 화순 도곡면 달아실 마을(한자로 월곡리로 표기한다)로 마실을 나섰다.

달아실 마을이란 이름은 마을 뒷산인 건지산에서 보면 마을의 형국이 달 모양이라 생긴 이름. 풍수지리적으로도 명당에 해당하는 곳이라고 한다.

우리네 명당이란 농사 지을 땅 많고 살기 좋은 곳이었을 것이다. 화순지역이 산이 많은 곳인데 이 달아실 마을은 화순에서 평야가 가장 넓어 부자마을로 알려져 있다. 18세기부터 달아실에 들어와 터를 잡은 ‘양’씨 일가 중 ‘양회두’씨 땅이 근동에 얼마나 넓게 자리 잡고 있었든지, 양씨 땅을 밟지 않으면 보성을 갈 수 없었다 할 정도였다고 한다.

만석꾼으로 알려진 양회두씨 가옥이 아직 남아있다. 사람이 살지 않아 지금은 다 허물어져 가고 있지만 화순군 향토문화유산 6호로 지정돼 보수를 했다.

19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진 이 가옥에는 우선 솟을대문이 있는 행랑채가 눈에 띈다. 본래 20칸이었으나 현재는 12칸만 남아있다. 긴 회랑의 끝에는 이 집에서 자체적으로 사용하던 방앗간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안채는 남북으로 H자 모양으로 동향이며 정면 7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다.

양회두 가옥의 솟을 대문이 사랑채. 20칸이었다고 하나 현재는 12칸만 남아있고, 이 사랑채로 만석꾼의 집임을 추정하고 있다.

이미 지난 84년에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양동호·양승수 가옥에 비해 지어진 시기나 건축적 가치가 뒤지지 않는데도 이제야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는 사랑채를 보수하면서 기와가 아닌 양와로 얹은 것이 흠이 되었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서 들어서자면 양동호·양승수 가옥이 먼저이고 양회두 가옥은 더 안으로 들어선 곳에 있다.

양동호 가옥 입구에 국가지정 중요 민속자료 제152호 설명판이 붙어있다. 19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택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 뒷면이 보이고, 돌아 들어가면 마당과 안채 사랑채가 있다. ‘디귿’자 형 안채와 ‘일자’형 사랑채가 ‘미음’자 형을 이루는 구조이다.

안채는 큰방과 대청이 나란히 있는 남방식이고 대청공간이 매우 크며 세 공간으로 구분되는 점이 특이하다. 뼈대는 기본적으로 양쪽 날개를 3칸으로 처리하고 몸채는 후퇴로 구했으며 왼쪽날개는 3칸·오른쪽은 4칸·몸채는 5칸이다.

이 집은 집 주인 정영분 할머니가 살고 있다. 사람의 온기가 큰집을 지탱하고 있는 느낌이다. 집 주변에 둘러쳐진 흙담도 옛것을 다 쓸어버리지 않았다. 허물어진 부분만 새로 황토로 지었다. 오랜 세월을 겪은 담과 새 담이 자연스럽게 서로 스며들어 정취를 살리고 있었다.

바로 옆에 나란히 있는 양승수 가옥은 비탈진 대지의 2단의 높은 축대 위에 거의 서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안채는 ―자형 평면이며 간살이는 왼쪽 날개는 3칸반, 오른쪽 날개는 3칸이며 몸채는 4칸이다. 20세기 중반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보존 관리는 되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살고 있지는 않았다. 안방에는 2000년 10월호 달력이 세월을 잊은 채 걸려 있었다.

또한 이 달아실 마을에는 학포 양팽손 선생을 모시는 사당인 '학포선생부조묘'가 있다. 이 사당은 신실구역과 강학구역으로 나뉘어있는데 신실구역에만 보호담장을 둘렀다.

강학구역인 경장각은 신실 정면 좌측에 위치해 있으며, 이 경장각은 학포문집과 정암문집을 만든 판각이 보관돼있던 곳이었다. 그러나 경장각이 한말 전남 동남부 지역 항일 의병활동을 이끈 양회일의 활동거점이기도 하고, 이 곳에서 야학도 하고 빨치산의 도피처로 사용되기도 하는 바람에 6·25때 경찰들이 불태워 판각은 없어지고 경장각만 복원돼있다.

“달아실 마을은 땅이 좋은 명당 지역이다. 건축물은 그곳의 땅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부자 동네이니 집도 크게 튼튼하게 전통을 지켜가며 지었을 것으로 본다”고 화순군 문화재위원 심홍섭씨는 말한다.

마당에 눈이 가득 쌓여있다. 쓸어낸 빗자루 자국도 발자국도 없다. 문이 삐긋이 열린 부엌을 내다보아도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비어있는 집인가 하고 발소리에 조심성이 사라질 때, 방안에서 기척소리가 들린다. 그제서야 아! 누군가 사는구나 싶다.

“누구요?”

열린 문으로 나타난 할머니 한 분.

“혼자 사세요?”

“다른 집도 다 혼자 살어. 추운디 들어와”

방으로 들어섰을 때 눈에 띄는 방안 풍경은 상자 위에 마치 그곳이 제자리인 듯 놓여있는 플라스틱 보라색 슬리퍼와 비닐을 방석 삼아 놓여있는 설거지통, 그 통 안에 수저 한 벌. 그리고 전화 받침대로 사용하고 있는 도마(?)이다.

“신발도 없어서 아무도 안 사는 줄 알았어요.”

“누가 오면 성가신게 신발을 들여놓고 있네.”

이 큰집에서 할머니가 생활하는 공간은 이 방 한 칸이다. 구들장은 따뜻했다.

할머니가 이 집에 들어온 지는 현재 환갑을 지낸 큰아들이 소학교 다닐 때였다하니 50년이 넘었다. 아들 둘 딸 둘 넷을 키워서 다 대처에 내보내고 혼자 사신다. 연세를 물어도 “나 많이 먹었어. 죽을나이여. 죽을나이”하시고 말기 때문에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고 대략 80세는 넘으셨다.

다른 가족과 함께 지내야 할 연세인데 혼자 사는 이유에 대해 할머니는 “이녁 집에서 살아야제”한마디뿐. 택호가 ‘대실떡’인 정영분 할머니는 날씨도 춥고 미끄러워 ‘밤나 누워’지내신단다. 안 심심하냐는 말에는 “심심해도 땃땃하니 누워있으믄 살만해”하신다.

“근데 저 도마는 뭐예요?”

“이것이 꼬치도매여. 지금이 한창때것네. 미영 타갔고 말고 할 때 쓰는 꼬치도매.” 겨울 길쌈에 사용했던 도구였다. 그야말로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던 사람에게는 도마가 조금 크다 싶은 것이었다.

시골에 혼자 지내는 노인들이 어디 대실떡 할머니뿐만이 아닐 것이다.

동무 삼아 틀어놓은 텔레비전 소리가 문밖으로 새나온다.

제공/심홍섭(화순군 문화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