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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정상 천왕봉 주변에 모처럼 사람 행렬이 끝 간데 없이 이어졌다. 지난 14일 무등산 정상을 하루 개방한다는 소식에 광주를 비롯, 전국 각처에서 등산객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광주와 화순, 담양 3개 시ㆍ군에 걸쳐 있는 무등산은 평소에도 '천의 얼굴'을 가진 명산이라 할 만하다.

서석대와 입석대의 오각형, 육각형의 깎아지른 돌기둥인 '주상절리(柱狀節理)' 앞에 서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마치 잘 다듬어진 선비돌 같다. 어디 그 뿐인가. 백악기후기 이래 수천만 년 풍상을 거치면서, 돌기둥이 무너져 산비탈에 쌓여있는 '너덜겅'은 세상천지를 다 둘러봐도 광주 무등산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희귀한 자연유산이다. 이처럼 신비롭고 빼어난 절경을 가진 무등산은 사시사철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몰려드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한 가지, 무등산에 올랐다가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던 아쉬움은 광주시민이라면 누구나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무등산 정상은 해발 1187m인 천왕봉을 위시해, 지왕봉과 인왕봉을 지척에 거느리고 있다. 이 세 개의 봉우리가 무등산 정상을 이루고 있으나 1966년 여기에 공군부대가 들어 선 이후 서석대 바로 위부터 철조망을 쳐 정상부근은 민간인 출입이 엄격히 통제돼 왔다.

그것이 올 5월 처음으로 45년 만에, 그것도 단 하루만 개방돼 우리에게 초유의 비경을 선사했으니 전국의 등산인들이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

이날 나는 선조들이 올랐던 '무등산 옛길 2구간'을 택해 등산했다. 무등산공원입구 원효사를 출발, 서석대까지 오르는 옛길은 생생한 무등산 역사의 산책길이었다. 오르는 길목에서 임진왜란 때 김덕룡 장군의 부대가 무기를 만들었다는 주검동 유적을 비롯, 치마바위, 원효계곡 시원지, 옛 군부대 보급품 종착지를 차례로 볼 수 있었다.

마침내 '선조들이 올랐던 옛길 11.87㎞ 완주를 축하합니다' 라는 안내글이 보였다. 서석대 조금 못 미쳐 군사도로에서였다. 여기서부터 잠깐 비탈길을 따라오르니 '서석대 1100m'라는 입석 글자가 한눈에 들어왔다. 무등산 천왕봉이 한눈에 올려다 보이는 곳이다. 민간인은 평소 이곳 서석대까지만 출입이 허용된다.

그러나 이날 하루 서석대 위쪽 군부대 후문 철조망을 열고 천왕봉 아래까지 이르는 산길을 개방하기에, 거기엔 형형색색의 등산객들로 사람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약 2㎞에 이르는 긴 외줄행렬이다.

등산객들은 그러나 이날 무등산 천왕봉 정상을 오를 수 없었다. 공군부대가 주둔하는 정상 개방 추진이 군부대 측의 반대로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란다. 대신 군인들의 안내로, 천왕봉 아래인 지왕봉과 인왕봉까지만 진입해 거기서 사진도 찍고 휴식을 즐기다가 하산해야 했다. 아쉬웠다.

광주시에 따르면 무등산 국립공원 지정을 추진하면서 군부대가 주둔하는 정상 부근을 일시적으로 개방하는 방안을 공군본부와 협의했으나 공군본부가 끝내 레이더망 등 주요 군사시설보호를 이유로 최종 반대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45년만의 첫 시도치고, 이번 무등산 정상 개방은 어느정도 성공작이었다. 비록 천왕봉 정상은 아예 빠지고, 그 아래 지왕봉 인왕봉마저도 봉우리 밑자락 군부대 앞마당에 들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이날 무등산 정상 개방은 광주시민과 전국 등산인들에게는 축복이었고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무등산 정상 개방과 국립공원 승격 문제는 이번처럼 일회성 행사에 그쳐서는 결코 해법이 나올 수 없다. 우선 군부대 이전 때까지는 해마다 정례적으로 정상개방을 했으면 한다. 따지고 보면 천왕봉에서 인왕봉으로, 다시 지왕봉으로 이어지는 무등산 정상을 완전히 개방하는 것은 논란거리도 되지 않는다. 최첨단 무기가 속속 선보이는 21세기에 60년대 지어진 군 시설은 군 부대와 정부의 의지와 결심만 있다면 오히려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라는 말이다.

궁극적으로, 광주시와 군당국은 더 진지한 자세로 검토하고 협의하여 무등산의 시계를 조속히 '1966년 이전'으로 돌려주길 기대해 본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이 문제에 대한 최상의 해법은 가급적 빨리 무등산을 광주시민에게 영구히 돌려주는 방안이 연구되고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구동수<호님대 유럽문화. 동신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