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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십억의 인간들, 그 누군들 ‘세상에 나온 값’을 하고 싶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흔히 부귀공명(富貴功名)으로 표현되는 세상에 나온 값을 제대로 하고 삶을 마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더욱이 물건에도 격(格)이 있고, 사람에도 격이 있듯이 부귀공명에도 격이 있을 터이니, 스스로 만족할만한 부귀공명에 올랐다고 자족(自足)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어디 그 뿐인가. 지난 봉건시대와 달리 부귀공명이 세습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는 극히 일부이고, 대개는 개인의 부단한 노력 없이는 거기에 도달하기가 쉽지않은 세상이니 ‘살만큼 살고 간다’고 만족한 미소를 짓기까지는 험난한 세태(世態)속에서 얼마나 혹독한 경쟁을 치루어야 하겠는가.

일찍이 공자는 사람 나이 육십을 이순(耳順)으로 표현했으니 이는 이때쯤 되면 세상의 온갖 험난하고 교활하고 달콤한 소리에도 귀가 현혹되지 않고 중심(中心)을 지킬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지칭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겠는가.

특히 귀가 이겨내기 쉽지 않는 일은 권력과 재물의 유혹일 것이다. 말타면 말잡이 두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고, ‘먹고 죽은 귀신은 얼굴색도 좋다’는 말이 있듯이 그 누구도 재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니 그 누구도 권력과 재물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권력을 얻고 재물을 모으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인가. 이른바 권력이라는 회전의자에 앉기위해서는 무수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니 그 과정은 마치 조그마한 돛단배를 타고 대양(大洋)을 항해하기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 과정에서 맞닥뜨려질 수밖에 없는 온갖 음해와 모략을 이겨내야 함은 물론이고 필요하면 타인을 음해도 해야하고 모략도 해야만 할 것이다.

재물을 모으는 것 역시 쉽지 않는 일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양심을 파는 것도 다반사일 것이며 투기하는 것 또한 마다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깨끗한 방법으로 돈버는 것이 아직까지는 쉽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지구상에서 인종이 많다보니 그 사는 모습 또한 천태만화(千態萬化)이다. 부귀와 공명을 좇아 분망하기 짝이 없이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상사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조용하게 일생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가지 분명한 것은 부귀와 공명을 좇는 사람의 삶에는 불가피하게 위선이 자리잡게 되고, 타인에게 해(害)를 끼치게 되며 결국에는 자신의 삶마져도 망가지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람 사귀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자연스럽게 주변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켜볼 수 있게 된다. 어떤 사람은 입만 열면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면서도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안쓰럽기만 하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아무 말이나 하지 말고 흐르는 세태에 몸을 맡기며 살면 될 터인데도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가정과 직장 이외에는 어떠한 곳에도 관심을 두지 않은채 살아가기도 한다. 심지어는 직장내에서의 일상적인 모임에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가 하면 학교 동기생 모임에도 얼굴을 비추는 일이 없다. 점심 후 뒷산을 산책할 때에도 그의 모습은 항상 혼자이다.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값어치 있게 사는 것일까. 나이를 잊은채 매사에 의욕적인 모습으로 사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스스로 나이를 깨달아 조용히 물러나는 모습이 아름다울 것인가.

지천명(知千命)을 넘은지 이미 오래되었고 이순(耳順)을 목전에 두고 있는 내가 지금에 이르러서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 스스로도 딱하다는 생각이 없지 않지만 나는 커다란 태풍이 불지 않는 한 언제나 잔잔함을 잃지 않는 산(山)밑의 호수처럼 살아가고 싶다.

오수열 <조선대 사회과학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