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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운이 좋았다. 화순 동복면 연월리 월송마을에선 달집놀이 예행연습이 한창이었다. 화순군 군민의 날에 있을 민속놀이 경연대회에 월송 달집놀이가 동복면 대표로 참석하게 됐다는 것이다.

마을 뒤 고십재에는 숱한 애환 담기고 마을의 형국이 달의 형국을 하고 있다 하여 ‘월송’이라 부르는 연월리 월송마을은 산이 많기로 유명한 동복면에 있다.

1914년 전까지는 동복현이라는 독자적인 행정체계를 유지했던 동복면 일대에는 변질되지 않은 원형의 산간문화들이 잘 남아 있다.

많은 산으로 둘러싸여 폐쇄적인 곳이기도 하지만 비옥하고 넓은 토지와 산림자원으로 예부터 부자들이 많기도 했던 곳이다. 이런 물적 자원을 토대로 독자적인 고유문화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동복에는 무형문화재인 한천농악이 이어지고 있으며 마을마다 당산제 등 마을 공동체 문화가 살아 있다.

월송마을은 역사 속에도 자주 등장하는 산골마을이다. 동복향교가 마을 뒤에 있으며 동복면 소재지와 인근의 너른 벌판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리고 마을 뒤의 고십재(姑巢峙)는 동복현감이 발령을 받고 부임할 때 동복으로 들어오던 길로 많은 사람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고개며, 기묘사화 때 이곳으로 귀향 온 신재 최산두 선생을 봉안하는 사액된 도원서원이 있다.

그래서일까. 이곳 마을 사람들의 삶은 선비처럼 꼿꼿하다. 대처럼 강직하다. 특히 유재석(72) 이장의 삶은 대처럼 강직한 선비의 삶이다.

학구열이 대단하여 지금도 서점에 가서 책을 사들고 와 책을 읽는다. 그리고 친구들끼리 모여 토론회도 한다. 공부는 끝이 없다며 항상 책과 함께 지낸다는 그의 말은 끝도 없이 흘러나오는 얘깃거리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월송마을 뒤 향교 주위에는 대나무가 울창하다. 동복면에서 이렇게 많은 대나무밭을 갖고 있는 마을이 없다 한다. 그래서 월송마을엔 달집놀이가 성행했었나 보다. 하긴 달의 형국을 하고 있는 마을이니 달맞이 하는 달집놀이는 당연지사였다.

정월대보름이면 펼쳐지는 달집놀이엔 달집을 크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대나무가 많이 필요하다. 전에 월송마을 달집놀이 할 때 마을 앞에 세워 둔 달집을 본 적이 있다. 그 높이가 자그마치 30여 미터나 되는 횃불 모양의 달집이었다.

그 달집놀이를 연습한다고 마을 사람들이 회관 앞 당산나무 밑에 모여 있다.

“말도 말어. 지금이 어떤 때여. 못자리 준비해야제. 고추모 키워야제. 정신없이 바빠 죽겄는디 이거 연습하고 있을 때가 아녀 시방!”

“아따, 그것을 누가 모른가. 안 바쁜 사람이 누가 있당가. 그래도 동복면의 대표로 우리 마

을이 나강께, 영광으로 알고 한번 해 보세야.”

#한천농악도 도망간다는 ‘월송 달집놀이’

마을 사람들마다 봄이 되어 농사를 지어야 하는 이 때에 돈도 안 되는 민속놀이 연습이나 하고 있으니 답답도 할 만하다. 이렇게 불만이 가득한 사람들에게 막걸리 한 잔 부으면서 달래는 이장은 입술이 바짝 말라 있다.

70이 넘은 나이에 책임지고 곧 있을 ‘군민의 날’ 행사에 나갈 민속놀이 경연대회 출연작인 월송 달집놀이 연습을 해야 하니 애가 바싹 타는 모양이다.

“아, 이런 거 한다고 어디 돈이 나와 밥이 나와.”

“아따, 자네 왜 그런가.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마을 달집놀이는 인동에서도 유명한 거 자네도 알잖는가. 그것을 한번 재현해 보자는 거 아닌가. 그러다보믄 우리 동네 홍보도 되고 말이시.”

“말이 연습이제, 형님도 알다시피 달집 한번 만들라믄 얼마나 힘든지 알잖소. 그래서 흘라믄 동네사람들이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전부 참석해서 한번 해 보잔 말이제. 나 말은.”

“그러제, 그 말은 맞제. 안 흘라고 했으믄 모르지만 한번 흔다고 했으면 확실하게 해야제.”

“잘 흘 것이네. 아, 자네도 알다시피 예전에는 막걸리 한잔만 있어도 농악 치고 안 놀았는가.”

“그랬제, 말이사 바른 말이제. 우리 동네같이 잘 논 마을도 없었제, 암.”

“아, 저기 농악깨나 친다는 한천놈들이 우리 동네가 농악치고 놀고 있으믄 옆구리에다 깽메기 끼고 와서는 같이 한 번 끼자고 했어. 그러고 놀다가 우리동네 농악 치는 거 보고 오줌 질질 싸고 도망가부렀제, 하하!”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한천농악을 보유한 한천마을이 월송마을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 풍물을 치면 한천마을에서도 풍물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동네 아주머니들 모여 고깔 종이꽃 만들고

회관으로 들어가 보니 동네 아주머니들이 죄다 모여 앉아 고깔에 달 종이꽃을 펴고 있다.

“우리가 뭐 안다고, 우리들은 이장님이 시키는 대로만 해. 아, 이렇게 꼬부랑 할미가 다 돼갖고 뭘 흐것소만 참가허는 디 의의가 있는 거 아니겄소.”

동복면에서 제법 크다는 마을인데도 월송마을에서 가장 젊은사람이 60대 후반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어진 지가 오래란다. 죄다 인근의 광주로 많이 나가서 아이들이 없는 다른동네와 마찬가지 상황이다.

“우리 동네는 동복에서도 잘 놀기로 소문난 동네요. 젊은 사람만 많이 있으믄 이까짓 거 달집놀이쯤은 아무 것도 아니제.”

“하믄, 그런디 사람이 없어. 사람이.”

“아, 어서들 나와. 뭐하고 있어. 얼릉 연습흐고 밭일이라도 해야 헐 거 아니여!”

아까 바쁜데 연습한다고 불만이 가득하던 분이 모두 당산으로 나오라고 한다. 그때 당산에서 풍물소리가 요란하다. 연습이 시작된 모양이다.

허리가 구부정한 할아버지도 있고, 신경통 때문에 절름발이를 하면서도 포수를 하겠다고 포수복장을 걸친 할아버지가 빗자루를 들고서 총이라고 너스레를 놓는다. 말이 없던 상쇠 아저씨는 꽹과리를 잡으니 완전 딴사람 같다. 신명나게 꽹과리를 두드리는 모양이 활기차다.

공연 연습을 지도하는 이장이 갑자기 분주하다. 그리고 덩달아 신명이 붙는지 어깨춤을 들썩인다.

#아이들 울음소리 끊겼지만 쇠소리는 쨍쨍

정말 젊은이라고는 한사람도 찾을 수 없다. 이렇게 해서 공연연습이 될까 싶기도 하지만 어차피 프로가 아니고 순수한 마을 사람들이 펼치는 살아있는 민속놀이이니 오히려 그 의미가 커 보인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오로지 마을 촌로들로 구성된 경연팀은 민속놀이조차 무대화돼 가는 경연장에서 투박하지만 진솔한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낼 터이다.

마을 사람들 사이를 오가는 이장의 몸짓이 흥겹다. 일년 농사를 시작해야 하는 바쁜 봄철이지만 마을 사람들이 함께 하는 이런 순간이 있기에 마을공동체도 이어지는 것. 아이들 울음소리 끊어진 지 오래인 산골마을에 울리는 쇠소리 쨍쨍하다.

심홍섭 <화순군 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