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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에도 유행이 있음은 세상을 조금만 오래 살아본 사람들은 느낄 수 있다. 50대 이후의 사람들에게 ‘피자’가 간식거리로서 가슴속에 다가올 수 없듯이 지금 청소년들에게는 인절미와 송편이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음식인 것이 분명하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60년대 후반은 참으로 살기가 팍팍한 시절이었다. 특히나 ‘68년 한해(旱害)’라고 불리 우는 극심한 가뭄 속에서 온 나라가 먹고사는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던 상황에서 대학생들의 삶 또한 요즘처럼 낭만을 구가할 처지가 되지 못했음은 불문가지일 것이다. 오죽 했으면 가뭄으로 농사를 짓지 못한 농촌 학생들의 학자금을 정부가 지원해준 이른바 ‘한해 장학생’이 등장했겠는가.

그처럼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한창 식욕이 왕성할 때인 대학생들에게 간식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일 것이다. 바로 그 시절 가장 적은 돈으로 손쉽게 허기진 입맛을 달래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꽈배기’였다.

지금이야 캠퍼스 전체가 ‘공원화’되어 봄철에는 상춘객이, 여름에는 피서객이 몰리는 명소가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그 우람함을 자랑하는 플라타너스 그늘이외에는 쉴 곳도 마땅치 않던 곳이 바로 내가 다니던 대학이었다.

강의실 또한 지금은 거의 모든 단과대학들이 단독건물을 갖게 되어 단일 건물로는 세계대학에서 가장 길다는 ‘본관’의 활용도가 많이 감소되었지만, 당시에는 공대, 의대, 약대를 제외한 모든 단과대학들이 옹기종기 본관에 모여 지내던 시절이었다.

협소한 공간에 쉴 곳 또한 마땅치 않는 본관에서의 수업이 끝나고 다음 강의를 기다리는 동안 학생들이 찾는 곳이 도서관임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강의가 없을 때마다 지금은 학생회관으로 바뀌어버린 중앙도서관 뒤 숲속의 벤치를 찾아 휴식을 취하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여름 지금은 중견 종합건설회사의 회장으로 성공한, 같은 학과의 단짝 친구 ‘민수’와 함께 여느 때와 같이 ‘중도’뒤의 벤치를 찾아가는데 그가 “야, 수열아! 우리 꽈배기나 먹자”며 나의 손목을 끄는 것이었다.

나 역시 출출하던 때에 그의 제의가 반가울 수밖에 없던 터라 우리 두 사람은 라면 박스에 꽈배기를 담아 팔러 다니는 어린 소년을 불러 “우린 먹을 테니 너 계산 잘해라”며 먹기 시작했는데, 얼마만큼 먹은 후 “우리 얼마치 먹었냐?”는 질문에 그 소년은 “800원 어치 먹었는데요”라며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생각해보시라. 얼마나 식욕이 왕성했으면 한 개에 20원하는 꽈배기 값이 800원이나 나왔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서부터 발생하였다. 먼저 먹자고 제의한 민수가 호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돈이 없다는 것이 아닌가.

물론 나에게도 그만큼의 돈은 있었지만, 먼저 먹자고 해놓고서는 돈 없다고 뒤로 빼는 게 괘씸해 나도 돈이 없다고 능청을 떨면서 수업 받으러 가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꽈배기 소년의 눈에도 친구가 훨씬 돈이 있어 보였던지 그는 친구에게 다가가 돈을 달라며 재촉하기 시작하였으니 친구의 입장이 어떻게 되었겠는가.

더욱이 당시 중앙도서관에는 여자초급대학(2년제)이 함께 있던 때여서 주위를 오가거나 벤치에서 쉬고 있던 여학생들이 이 광경을 재미있게 지켜보고 있었으니……

나는 내친김에 좀 더 골탕을 먹일 요량으로 “먼저 간다”는 말을 남기고 친구와 꽈배기 소년을 뒤로한 채 본관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더니 친구는 거의 울상에 가까운 모습으로 “야, 새끼야! 돈 좀 주고 가야”라며 그 또한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나의 뒤를 따라나서는 것이었다.

내가 앞서고, 그 뒤로 꽈배기 박스를 옆에 낀 채 친구의 팔소매를 잡아당기며 돈을 달라고 졸라대는 소년에게 “누가 떼어 먹냐? 조금만 기다리란 마다”며 쩔쩔매는 친구가 뒤 따르는 기묘한 3인 행렬이 백주의 캠퍼스에서 10여 분간이나 계속되었으니 그 모습이 어떠했을까.

본관입구에 이르러서야 내가 지갑을 털어 소년에게 꽈배기 값을 지불하였더니, 친구는 “개새끼, 있으면서도 사람을 골탕 먹이고 있다”며 분을 삭이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처럼 지난날 우리들에게 삶의 일부분으로 녹아있는 꽈배기가 지금은 그 모습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밀가루와 설탕 그리고 쇼팅기름에 다소간의 손재주만 있으면 누구라도 쉽게 만들 수 있었던 추억의 꽈배기가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것과 함께, 그것을 그리워하는 세대 또한 하나 둘씩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사업에는 성공하였으나 벌써 오래전 건강이 좋지 않아 고생하던 친구가 최근에는 많이 회복되어 필드에 나가 골프를 즐기기도 한다는 말이 들려오니 퍽이나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라는 옛시조의 한 구절처럼 그곳을 즐겨 찾았던 젊은이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지만, 플라타너스 밑의 벤치는 변함이 없는 가운데 나는 중앙도서관 뒤의 계단을 올라오면서 어느덧 40여년 전의 꽈배기 사건으로 시간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오수열<전남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