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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보다도 강한 것은 이성이 아니라 사상이다. 그래서 이런 사상은 미리 막지 않으면 안된다. 한데도 우리는 북한이 이런 사상으로 백성을 죽음으로 내몰아도 막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남한도 죽음의 사상으로 내몰기 위해 한술 더 떠 간첩까지 내려보내고 있다.

이렇다보니 과거 우리는 '수상하면 신고하자' '자수하여 광명 찾자' 새벽 이슬에 젖은 군화발 인간이나 북한 사투리를 쓰는 인간은 즉시 신고 대상이었다. 학교에선 반공교육이나 웅변대회도 성행했다.

북한의 대남 적화야욕은 무차별적이었다. 전쟁 위협 속에 끊임없이 무장간첩을 남으로 내려보냈다. 1968년 1월 김신조 등 무장간첩 31명의 청와대 습격, 이듬해 3월 강원도 주문진 무장간첩 침투, 같은 해 11월 무장간첩 90명의 울진·삼척 침투 등 끝이 없었다.1990년대, 2000대에도 북의 간첩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북의 간첩질에 대응하는 수단은 신고다. '수상하면' 신고부터 하고 봤다. 간혹 약초꾼이 신고로 잡혀오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주민의 신고정신은 투철했다.

그런데 지금은 주인이 도둑이라 개가 안짖듯, 상사가 간첩이라 못잡는다는 말도 있다. 한편에선 간첩이 이젠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는 간첩이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독일이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다. 베를린 자유대 학생 베노 오네즈로크(26)가 경찰의 총격에 사망 서독이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있다. 한데 오네조르가 죽은지 42년이 지나 총을 쏜 서독 경찰관 카를하인츠 쿠라스가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의 첩자였던 사실이 슈타지 문서를 통해 확인됐다고 독일 언론이 보도했다.

동독간첩의 총 한방은 역사의 물꼬를 바꿔놓았다. '우파정부의 주구(走狗)인 경찰이 죄없는 학생을 죽였다'고 해서 젊은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중 가장 과격한 조직이 안드레이스 바더라는 청년과 울리케 마인호프라는 여기자가 만든 적군파였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은 1967년부터의 독일 역사는 다시 쓰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독 간첩이 서독 곳곳에 침투한 사실은 '연방 슈타지 문서보관소'가 1990년 통독후 휴타지 문서를 조사한 후에야 밝혀졌다. 슈타지는 서독에 3만여 명의 거물 고정 간첩을 두고 국회의원 각료 정보기관은 물론 의원보좌관과 대학생까지 포섭했다.

1973년 빌리 브란트 총리의 수행비서 권터 기용이 슈타지 요원으로 드러난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우리 대한민국 검찰은 8월 25일 왕재산 간첩단 사건을 발표했다. 왕재산 서울지역책 이 모씨는 민주당 소속의 임채정 전 국회의장 비서관을 지내며 정치권 정보를 수집해 북한에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민주노동당에도 수사대상자가 여러명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사회에서 간첩이란 단어를 진지하게 말해본게 언제인지 떠올려보라. 가물가물할 것이다.

간첩단 사건은 1999년 '주사파 대부' 김영환이 연루된 민족민주혁명당 사건 이후 12년 만에 처음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1992년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의 총책 황인오의 동생으로 역시 간첩죄 선고를 받은 황인욱은 비슷한 해 같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녀 개인적으로 잊어버릴 수 없다.

1997년 김정일의 처조카 이한영 씨가 간첩으로 추정되는 괴한에게 살해되었다. 1999년은 영화 '쉬리'와 '간첩 리철진'이 나온 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간첩 수사만 사라진게 아니라 간첩의 이미지가 바뀌었다. 이정희 민노당 대표는 왕재산 간첩단 사건을 "통합 진보정당과 야권연대를 겨냥한 흠집내기"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2003년 민노당 고문이 북한 인사에게 정보를 건넸다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2006년엔 민노당 중앙위원 등이 일심회 간첩단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민노당 실체가 뭔지 의심스럽다. 공안당국은 왕재산이 정치권 상층부 침투를 시도하거나 선거에 개입한 정황을 파악하고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행정기관 방송국 군부대 등을 장악하거나 폭파할 계획을 세운 사실도 밝혀냈다. 민노당이 종북세력과 무관하다면 왕재산 사건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고운석<시인. 무진주문화마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