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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대변자는 선거민을 대신해서 판단할 의무가 있다. 여론에만 밀려 자기 판단을 보류하는 것은 배신행위이다. 한데 내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출판기념회가 줄을 잇고 있다.

결혼식 청첩장처럼 뿌려대는 출판기념회 초대장은 요즘도 많게는 하루 서너 건씩 동시다발로 나돈다. 현역 국회의원 295명 가운데 올해 들어 출판기념회를 열거나 선거법 제한을 받는 내년 1월 10일(총선 90일 이전 규정)까지 개최 예정인 의원만 따져봐도 100여명을 훌쩍 넘는다.

여기에 원내 복귀를 노리는 전직 의원, 정치에 입문하려는 거물급 인사들을 합치면 수백 명이 너도나도 출판기념행사를 벌인다는 얘기다. 또 좀 다른 모습이긴 하나 교보문고 등에 가면 대선을 앞둔 출간물이나 진보와 보수진영의 책들도 볼 수 있는데, '닥치고 정치'(김어준) '나는 꼼수다 뒷담화'(김용민), '운명'(문재인) '진보정권 플랜'(조국 오연호) 등이 정치사회 베스트셀러 코너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모두 야권진영의 책으로 등장인물이 비슷하다. '나는 꼼수다'로 뜬 김어준은 '닥치고 정치'에서 문재인을 치켜세우고 그 문재인은 '운명'을 썼다. 김용민 역시 '나 꼼수'의 일원으로 뒷담화를 늘어놓고 조국 현상을 얘기한다. 조국현상은 '진보집권플랜'에서 시작됐다.

보수우파 진영에서 내놓은 책들은 드물게 보인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의 '보수, 비탈에 서다', 나성린 의원과 최홍재 시대정신 이사의 '대한민국을 부탁해'는 출간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도 진열대에서 보기 힘들다. 전원책 변호사의 '자유의 적들'만이 간신이 눈에 띈다.

신(新)매체인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어 구(舊)매체인 출판까지 이른바 진보좌파가 주도권을 쥐었다 인터뷰 형식을 빌리거나 구어체로 쉽게 쓰는 전략이 독자들에게 먹혀들었는지도 모른다.

진짜 보고자 하는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들의 글들은 안 보인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자서전 비슷한 책을 낸 적이 있지만 차기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이 궁금해 하는 중요 이슈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서울대 안철수 원장도 마찬가지다.

언론 인터뷰에서도 감질나는 '단답'이 대부분이다. 곧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듯한 행보를 이어가는데도 정작 본인은 정치비전을 알 수 있는 책이 하나도 없고 인터뷰도 안한다. 한데 총선 입지자들의 출판기념회는 홍수를 이루고 있다. 내용은 대부분 형편없는데, 정가 1만~2만 원짜리 책을 10만 원에서 수백만 원까지 받으면서다. 실지 정치인으로서 철학과 사상을 담은 깊이 있는 책은 찾아보기 어렵고 신변잡기, 취미생활 수준인 잡서를 출판업자에 맡겨 펴낸다. 이렇다보니 일부는 모양만 갖춘 쓰레기 서적들이다. 정치인들이 책 출간을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함부로 정치자금을 받다간 쇠고랑을 차기 십상이니 선거자금을 손쉽게 마련하려는 것이다. 정치자금법상 공식 후원금엔 까다로운 규정을 적용하면서 이런 편법 모금을 방치하는 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짓이다.

특히 현역 의원의 권한 남용 행태는 속히 시정해야 한다. 금융권, 건설업자, 인허가, 산하기관 등과 얽힌 노른자 상임위일수록 민폐를 심하게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상으로 국회의원은 연간 1억5000만 원을 후원금으로 받을 수 있고 선거가 있는 해엔 3억 원까지 가능하다.

이들이 선거에서 공천을 받거나 출마한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개중에는 고의적으로 돈만 챙기는 부류도 있다. 앞으론 출판기념회를 정치자금법으로 규제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고운석<시인. 광주남구발전협의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