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프린트하기

한국인들은 커피를 즐겨 마시고, 중국이나 일본인들은 차(茶)를 즐겨 마신다. 차는 중국에서 제일 많이 생산되고 있으며, 우리나라 차보다 차의 종류도 다양하다. 중국이나 인도에서 싣고 간 차는 영국에 도착하면 두엄이 되는 데 이것을 홍차(紅茶)라 한다.

이 홍차를 식민지인 미국에 세금을 붙여 비싸게 판매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보스턴 차(茶)사건’이 발생하였다. 차 사건은 영국의 지나친 세금 징수에 반발한 북아메리카 식민지 주민들이 아메리카 토착민인 인디언으로 위장해 1773년 12월 16일 보스턴 항에 정박한 동인도회사 배 2척에 실려 있던 홍차 300여 상자를 바다에 버린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미국은 1776년 7월 4일 독립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홍차에 대신하는 음료가 바로 커피다. 지금도 영국인들은 홍차를 즐겨마시고 미국인들은 커피를 즐겨 마신다. 인간에게 활력을 주는 야생 커피의 각성 효과를 최초로 발견한 것은 에티오피아 사람들이다. 커피 재배를 본격화한 것은 아랍세계였다.

술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숨겨진 욕망과 감정을 드러내게 만드는 감성의 음료다. 반대로 커피는 머리를 각성상태로 만들어 생각을 하게끔 하는 이성의 음료다. 이슬람권은 술을 금지시키는 대신에 커피를 대용음료로 인정했던 것 같다. 1511년 메카의 보수적 종교지도자들은 커피가 확산되자 커피 판매와 소비를 금지하는 법령을 공포했다.

카페인에 중독된 주민이 반발하자 오스만터키 술탄 셀림 1세는 커피 금지령을 폐지했다. 1605년 일부 가톨릭교도들이 이슬람교도가 주로 마시던 커피를 '악마의 음료' 라며 교황청에 고발했다. 교황 클레멘토 8세는 판단을 내리기 위해 커피를 맛본 뒤 금지는커녕 커피에 세례까지 베풀었으며, 음악가 바하는 커피에 대한 노래를 바쳤다.

한국인 중에서 커피를 가장 먼저 마신 사람은 고종황제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고종황제가 러시아공사관으로 아관파천(俄館播遷)했던 시절이었다. 고종이 커피를 보고 “이것이 무슨 차인가”를 물어 보자 “가배차(咖啡茶)로 불로장생 차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가배(咖啡)란 커피를 나타내는 한자(漢字)로 우리는 사용하지 않지만 중국은 ‘카페이’로 일본은 ‘고히’로 사용하고 있다. 올해 커피 수입액이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처음 3억 달러를 돌파했는데 1년 만에 5억 달러를 넘어섰으니, 과연 한국은 커피 공화국이라 할 만하다. 우리나라는 각종 커피로 인한 커피문화도 눈부시게 진화했다.

한 취업포털사이트가 직장인 2065명을 상대로 조사했더니 하루 평균 마시는 커피는 3.4잔이고 88%가 커피를 마시지 못했을 때 금단현상을 보인다고 했다. 대형마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것은 무엇일까? 늘 밥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시장 판매율 1위를 고수하던 쌀이 3위로 말려난 지 오래며, 2위가 라면이다.

커피는 그야말로 기호 식품이다.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커피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사람이 물 다음으로 많이 마시는 음료가 커피다. 국제교역량으로 볼 때 석유 다음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국제 무역규모에서 커피가 차지하는 양이 실로 어마어마하다는 이야기이다. 커피가 위세를 떨치면서 유흥업소가 주점에서 다방으로 나뉘어 양분되기 시작했다.

시골 구석구석까지 다방이 들어섰고, 진한 화장에 아슬아슬한 옷을 입은 소위 '레지' 라고 불리는 아가씨들이 세련미과 퇴폐성을 지닌 자본주의의 상징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커피 수입량도 늘었지만 수입액이 더 많이 늘어난 것은 국제시장의 원두 값이 오른 데다 고급 원두 수입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국내 소비자들의 입맛이 고급화된 탓에 고급 원두 수입이 늘어난 것도 수입액이 늘어난 이유다. 인스턴트용 커피를 만드는 데 주로 쓰는 베트남산은 대폭 줄었다. 이제 우리도 커피 문화에서 차 문화로 바꿔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우리나라 차 문화는 너무 지나칠 정도로 복잡하고 예의를 차린 고급문화에서 일반적인 서민문화로 변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강원구 <호남대 초빙교수. 한중문화교류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