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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은 살기가 어렵다고 한숨인데도, 시정(市井)의 관심은 벌써 4월 총선에 모아져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 자체를 혐오하면서도 대화 가운데 감초는 언제나 정치인 데에서 우리 모두는 정치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숙명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정치가 요동치고 있다. 정치에 대한 혐오는 자연스럽게 현역 정치인 대부분에 대한 비판으로 나타나고 있고, 이는 곧 ‘물갈이론’이 탄력을 받는 요인이 되고 있다. 과거에는 지역에 탄탄한 기반을 갖고 있는 현역의원의 경우 짐짓 여유를 부릴 수 있었는데 반하여 지금은 물갈이론의 홍수에 밀려 허우적거리는 이재민(罹災民)과 같은 형상들이니 세상이 많이 변했음을 느끼게 한다.

그렇다고 새로 나서는 사람 가운데 딱히 눈감고 찍어주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기성 정치인에 대한 실망이 막연히 새로운 인물의 등장을 기대할 뿐이지 특정 새로운 인물에 대한 신뢰가 확고한 것도 아닌 것이다.

이처럼 유권자들이 정치 자체에 대해 신뢰를 상실하게 된 원인은 기본적으로 정치인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선거철에는 가장 성실하고 겸손한 사람처럼 행동하다가도 당선만 되고 나면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가하면 목에 힘이 들어가 거만스럽게 변하는 모습이 거의 통상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주요안건이 심의되는데도 텅 빈 국회의사당, 그리하여 의결 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아 쩔쩔 메는 사무처 직원들의 모습이 TV에 비춰질 때마다 국민들이 느끼는 상실감이 어느 정도일지에 대해 그들은 아랑곳 하지 않는 것이다.

지역 소재 대학(大學)이 로스쿨에 탈락할 지경이거나 주요 현안이 생겨, 구성원들이 밤낮 농성을 이어가는데도 단 한번도 현장을 찾지 않는 지역구 의원의 모습에서 어떻게 우리의 대변자라는 신뢰를 지닐 수 있겠는가. 이처럼 지역 유권자들과 정치인들과의 신뢰의 상실은 바로 지역정치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한국의 정치사에서 호남(湖南), 특히 광주․전남은 독재정치에 저항해 온 굳건한 민주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지역이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야당(野黨)의 주요 근거지가 되었는가 하면, 대선(大選)과 같은 중요한 정치적 전환기에는 호남 민심이 어디로 귀착 되느냐에 따라 그 향방(向方)이 결정되는 계기가 되곤 하였다. 다시 말하면 호남이 권력 향방의 ‘저울추’와 승부처로 인식 되었고 이는 호남의 정치적 위상이 결코 낮지 않음을 증명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광주․전남의 정치적 위상은 어떠한가? 현재 거론되고 있는 유력 대권주자 가운데 이곳 출신은 찾아보기 어렵고 심지어는 호남 출신이 주자로 나서는 경우 그 경쟁력은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는 패배감마저 없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날과 달리 지금은 인물로 평가하는 분위기로 바뀌어 가는 상황에서 “지역적 한계 때문에 전국적 인물로 성장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변명에 불과한 것이다. 최근 치러진 통합민주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과정에서 출신지역보다는 이념과 인물 중심의 선택이 이루어진 것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이제는 우리 지역의 정치도 자폐증에서 벗어나 보다 큰 시야로 미래를 조망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유권자들의 안목이 변화해야 한다. 조그마한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자질과 도덕성을 지닌 인물을 선택하는 현명함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지역을 대표할만한 정치인을 키우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치인의 성장은 먼저는 자신의 몫이지만 지역민들의 지지와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4월 총선이 지역정치에 새로운 희망의 싹을 틔우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선거풍토에서도 타 지역의 모범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오수열<조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