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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가면서 여기저기 아픈 곳이 나타난다고 한다. 흔히 성인병(成人病)이라고 불리는 당뇨병과 고혈압은 없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고 그 밖에도 심장병이나 관절계통의 질병 또한 동반자(同伴者)처럼 따라 붙는 것이다.

식사 모임에 나가보면 식후에 약봉지 꺼내는 친구들이 하나 둘씩 늘어가고 심지어는 거의 한 웅큼이나 되는 약을 입에 털어 넣으면서 겸연쩍은 웃음을 짓는 친구들이 많아지고 있다. 약과 함께 하면서도 바깥출입을 자유롭게 하는 경우는 그래도 나은 편에 속한다. 어떤 친구는 아예 보행이 불가능해져서 모임에 나오지도 못하는 경우마저 없지 않다.

건강의 소중함은 그것을 잃어보지 않는 사람은 잘 알지 못 한다. 설령 안다고 할지라도 그 절실함에 있어서는 온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 또한 몇해 전 건강에 이상 신호가 나타나 고생한 때가 있었다. 천하(天下)가 무섭지 않는 듯 종횡무진 바쁜 일상(日常)을 보내며 만용을 보였던 내가 아니던가. 그러나 과로에 장사(壯士)가 없었다.

드디어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고, 나의 산행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산행을 결심하는데도 동기가 필요하듯이 실제 산행을 하는 데에도 혼자서 다니기 보다는 동반자가 있는 것이 좋을 듯 싶었다. ‘남도요산회’(南道樂山會)를 조직하게 된 동기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사람은 산을 좋아한다.(智者樂水, 仁者樂山)는 구절에서 따온 지혜롭기 보다는 포근하고 우정을 나누는 사람들이 되자는 취지에서 내가 붙인 이름이다.

그 명칭에서 드러나듯이 남도요산회의 산행 목적은 알프스나 에베레스트와 같은 높은 산을 등정하면서 그 성공의 기쁨을 만끽하자는 것이 아니고, 그저 우리들 힘(力)에 맞는 산을 오르면서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었다.

그렇다보니 산행지는 해발 기준 500m 내외로 선택하였고, 산행에 드는 시간은 서너 시간이면 족하였다.

정례화를 위해 산행 날자는 매월 두 번째 토요일로 정하였고, 이 날이 되면 회원들은 가벼운 룩섹을 들쳐 메고 집결지에서 버스에 오른다.

산행에는 아무런 구속도 강제도 없다. 특별한 일이 있으면 못나오는 것이고, 없으면 나온다. 그저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한달에 한번씩 모여 산을 즐길 뿐이다. 산에 올라 적당히 땀을 흘릴 때가 되면 점심시간이 된다. 각자 준비해온 도시락을 꺼내 둥그렇게 둘러 앉아 서로 나누어 먹는 재미 또한 산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권이 아니겠는가. 식사 후 마시는 한 잔의 커피 맛을 어디에 비교할 수 있을까. 심지어는 평소 커피를 즐겨하지 않는 나마져도 그때만큼은 커피의 고소한 향(香) 속에 빠져든다.

산에 오르면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상큼한 공기도 좋지만, 철따라 다른 맛을 풍기는 산색(山色)을 만끽하는 것 또한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똑같은 공간 속에서 계절에 따라 전혀 다른 산색을 보이는 데에서는 경이로움마저 느낄 수 있다.

많은 문학 작품에서 높낮이가 심하지 않는 등급이 없는 완만한 산세(山勢)때문에 민중의 삶과 연결되어 묘사 되고 있는 무등산을 오르면서는 왜 광주 사람들이 휴일마다 이 산을 오르는지를 생각해 본다. 광주시민에게 무등산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저런 상념 속에 땀을 흘리다 보면 해는 이미 중천(中天)을 지나 기울어가기 시작한다.

오른 다음에는 내려와하는 법… 힘들여 오른 산에서 내려 올 때의 그 상쾌함을 어디에 비견할 것인가. 이미 몸속에서는 충전된 에너지가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다시 한달 뒤를 기약하며 헤어지는 산우(山友)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모두는 행복해진다.

오수열<조선대 정치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