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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른 들녘 모습을 좋아한다.

마음이 답답할 때, 들녘을 보면 넉넉한 어머니 품안을 연상케 하는 매력을 느낀다.

특히 황금물결이 출렁이는 가을 들녘은 풍요로워서 더욱 좋다. 잘 익은 벼의 모습에서 세월의 무게를 느낀다. 얼마나 아름다운 고개숙임인가?

무더운 여름 내내 목마름도 뜨거움도 침묵으로 일관한 인내 끝에 영글은 열매를 맺었고, 마지막까지 임무를 다하느라 무거워진 몸을 고개 숙여서 감당한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을 태워 주변을 밝히는 촛불과 같은 귀한 희생이며 봉사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아름다운 자연의 고귀한 세월의 무게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연두 빛 꿈으로 시작되는 봄부터 세상을 깨끗하게 감싸주는 흰눈 내리는 겨울까지의 세월이 주는 변화를 더 가까이 감상하고 관조하려고 여행을 떠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이는 세월의 무게를 찬양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우리들 일상의 삶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무게는 어떤가?

자연에 대해서는 넉넉한 우리들인데 우리 주변에서 느끼는 세월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가끔 세월을 잘못 영위하는 경우의 일도 주변에서 본다. 남에게 피해주는 삶, 남에게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한 삶, 자신의 귀한 삶을 스스로 포기해 버리는 삶 등 많은 모습이 있다.

특히 많은 세월동안 일하다 이제 편히 쉬어야 하는 노인들의 문제! 이 분들에게도 힘든 세월의 무게를 인정하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장수하면 다른 나라의 일이라고 생각되었는데 우리 나라도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장수의 나라로 손꼽힌다. 그에 따른 대책이 준비되어야 할 것 같다.

효에 대한 개념, 산업사회에서 어려워진 생활, 핵가족으로 인한 가족 개념 등의 변화는 사회를 참으로 커다란 변화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노인을 모시는 방법에서 달라진 풍속도를 들은 일이 있다.

어머니와 동반 자살한 어느 중년 남자의 이야기, 양로원보다는 노부모를 강원도 어느 외진 아파트에 모신다는 뉴스는 참으로 가슴 아픈 이야기였다. 우리 나라를 가리켜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일컫는 것은 이제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일부의 이야기이겠지만….

노부모를 모시지 못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나름대로 절실한 사연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나를 낳아준 부모에게 그런 대우를 한다는 것은 인간적인 면에서 몹시 안타깝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랑은 많이 받아본 사람이 또 다시 베풀 수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자연이나 신에게 많은 사람을 이미 받았다. 이제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베풀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자연은 이처럼 우리들에게 혼신의 힘으로 사랑을 베푸는데, 그 속의 사람들은 너무 이기적인 생각에 가득 차 있지는 않은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월은 참으로 귀한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기적인 삶에 급급한 나머지 세월의 귀함을 느끼지 못하고, 마음이 퇴색되어 버린 것일까?

세월의 무게를 지닌 자연이 아름답다면, 그 자연을 영위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의 생도 아름다워야 할 것이다. 세월의 무게를 인정하는 아름다움이 넘치는 사회는 살기 좋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이정재 <광주교육대학교 前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