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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인의 名판결

“장님 옆에 옹기 짐 세워놓은 게 잘못”

옛날 우리 민담에 장님 이야기가 많은데, 경기도에서 전하는 장님 한 사람은 똥구멍이 찢어지도록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하루는 길을 가다가 나무 그늘에 앉아서 자기가 앞으로 살아나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이때 옹기장수가 옹기 짐을 지고 가면서 살펴보니 장님이 중얼중얼하고 앉아 있는 것이 이상하여 가만히 옹기 짐을 내려놓고 장님 옆에 앉아서 장님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엿듣고 있었다. 장님 가로되, “달걀을 하나 사서 이 알을 이웃집 닭장 병아리 까는 데 넣었다가 암평아리 같으면 잘 길러야 겠다.

그래 다시 알을 내서 알을 또 병아리로 부화하고 그 병아리를 길러 알을 낳으면 또 알도 팔고 닭도 팔고 해서, 그 돈으로 송아지를 사고 또 송아질 낳고 소가 여러 필 되면 그것도 팔아서 집도 짓고, 나중에 부자가 되면 장가를 들겠다. 그래서 더욱 부자가 되면 첩을 얻고, 첩을 얻으면 큰마누라와 자연 싸우게 될 것이지만 말이야. 만일 그렇게 싸우기만 한다면, 작대기로 ‘이년들’ 하고 때려줘야지.” 이렇게 중얼거리며 장님은 들고 있던 지팡이로 후려갈기니 바로 옹기 짐이 맞아서 옹기그릇이 박살이 났겠다.

옹기장수는 “남의 옹기 짐을 쳤으니 물어내시오” 하며 막 야단을 치고, 장님은 장님대로 “앞 못보는 장님 앞에 갖다놓고, 더군다나 인기척도 없이 갖다놓고 무엇을 물어 달라느냐. 내가 일부러 옹기 짐을 때린 것도 아니요, 나 살아나갈 궁리를 하다가 그랬는데, 물어주지 못하겠다”고 했다.

옹기장수와 장님은 서로 물어내라거니 못물어내겠다거니 하며 싸움을 했다. 지나가던 행인이 옹기장수와 장님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여기서 무엇 때문에 싸움을 하느냐고 가서 물어보았다. 자초지종 이야기를 들어본 행인은 “이 분은 앞 못보는 장님이요. 또 장님도 모르게 옹기 짐을 내려놓고 당신은 남의 살림 이야기하는 것을 엿들었지 않았소.

장님은 자기 살림 이야기를 하다가 그렇게 때린 것이지 당신의 옹기 짐을 부수려고 그렇게 한 것은 아니지 않소. 분명 당신이 잘못했으니 물어달라고 할 수 없지 않소. 어서 갈 길이나 가시오” 하고 판결해 주었다. 그런데 옹기장수가 “이 한 짐의 옹기는 내 전재산이요” 하며 화를 내더니 “당신이 무얼 안다고 판결을 하는 것이요”라며 무시했다.

그러고선 옹기장수는 10리가 넘는 관아로 달려가 장님의 잘못을 주장했지만, 행인이 말한 대로 판결이 내려졌다고 전한다.

◇사람 잡아먹는 구렁이

죽을 위기에서 機智로 富者 돼

옛날 이야기들은 비록 싱거운 이야기들이지만 읽어가면 갈수록 많은 공명을 느끼고 그 구수함에 감탄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감탄되는 민담들이 어느 고을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존재한다. 국학(國學)에 관심 있는 사람은 물론 누구나 읽어 기억을 되살리고 조상의 옛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사람 잡아먹는 구렁이’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옛날 어떤 마을에 아주 가난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먹을 게 없어 친척집에 식량을 얻으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인데, 높은 산을 앞에 두고 날이 저물었다. 집에서는 처자가 굶어죽게 되고, 날은 저물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더욱이 그 산은 혼자 무사히 넘어간 사람이 없었다고 하니 무섭긴 했으나 가족들 때문에 용기를 내어 넘을 결심을 하였다.

어느 만큼 산 속으로 들어가니까 넓은 바위가 있어 거기서 잠시 쉬려고 했다. 그랬더니 웬 여자가 웃으면서 다가왔다. 그 여자가 하는 말이, “어떻게 이 산을 혼자 넘으시려 해요? 저 고개 하나 넘으면 우리 집이 있으니 그리로 가서 기다리면 사람들이 모일 테니 여럿이 함께 넘어가요” 했다.

시장기도 들던 판이라 여인을 따라갔다. 먼 곳에서 반짝이는 불빛만 보고 가느라고 그곳이 굴속인지도 모르고 얼마큼 갔다.

그런데 거기에는 집 같은 것이 있고 방안에 촛불이 반짝이었다. 그 여인은 어서 들어가 앉으라고 하였다. 얼마 후, 밥상을 차려다준 것을 보니 사람 손톱이 나왔다. 무서워서 벌벌 떨다가 용기를 내서 무슨 고기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여인은 갑자기 무서운 눈초리가 되어서, “나는 본래 이 굴속에 사는 구렁이인데, 지금까지 아흔 아홉 명을 잡아먹었다.

너 하나만 잡아먹으면 난 하늘로 올라가니 순순히 네 몸을 바쳐라” 하였다. 그래 이 사람은, 저 산 너머에 처자가 굶어 죽어가고 있으니 제발 살려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여자는 여전히 고개만 흔들었다. 그는 그럼 몸을 바치겠으니 집안 식구나 한번 보고 오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랬더니 그 여인은 그것은 어렵지 않으나, 만일 돌아오지 않으면 집안 식구까지 모두 잡아먹고 말겠다고 하였다.

그 사람은 그곳을 나오면서 그 여자에게 무얼 가장 싫어하느냐고 했더니 담뱃진이라고 말하며 “그럼 사람은 무얼 가장 무서워하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사람은 돈을 가장 무서워한다고 대답했다. 다음날 오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 동네 사람들의 담뱃진을 모조리 모았다.

다음날, 여인이 있는 굴로 들어가며 담뱃진을 조금씩 뿌려놓았다. 그 여자는 약속대로 와주었다고 좋아하면서 덤벼들려고 하였다. 그래 이 사람은 오줌이 마렵다고 하며 막 도망을 쳤다. 그랬더니 금세 그 여인은 구렁이가 되어 따라왔다.

조금 쫓아오더니 담뱃진 때문에 더 오질 못했다. 다음날, 그는 집에 웅크리고 앉아 구렁이의 원수 갚음을 두려워하고 있는데, 구렁이는 돈을 한 보따리 갖다놓고 쏜살같이 달아났다. 그 돈은 그 구렁이가 사람을 잡아먹고 쌓아둔 돈이었다. 그 사람은 그걸 갖고 아주 잘 살았다고 한다.

◇용감한 신부

호랑이에 물려가는 신랑 구해내

세상에는 용감한 남자만 있는 게 아니고 여자도 용감한 사람이 있다.

충청도 어느 마을에서 초례를 막 끝낸 신랑 신부가 신방으로 들어갔을 때다. 갑자기 천둥 벼락치는 소리가 나더니 “어흥!” 하는 소리와 함께 뒷문으로 황소 만한 호랑이가 바람처럼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신랑을 물고 달아나버렸다. 하지만 신부의 동작 또한 번개같이 빨라, 문지방을 뛰어넘는 호랑이의 뒷다리를 와락 끌어안고 매달렸다.

입에는 신랑을 물고 뒷다리는 신부에게 붙들린 채 호랑이는 산으로 올라갔다. 산에 오른 호랑이는 뛰고 또 뛰며 달렸다. 그럴수록 신부는 죽을힘을 다해 호랑이 다리를 붙들었다. 날듯이 뛰어오르는 호랑이의 다리 밑에서 신부의 몸은 마구 끌리고 퉁겨지며 바윗돌, 나뭇가지에 긁히고 부딪혔다.

옷은 찢겨 너울댔고, 상처투성이 몸에서는 피가 흘렀다. 신부의 몸은 끔찍하게 망가져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부는 죽을 각오로 호랑이 다리를 붙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이에 질린 호랑이는 마침내 물고 온 신랑을 비탈 위에 내려놓았다. 그토록 사나운 짐승도 놀란 모양이었다.

죽기를 각오한 신부의 모습에 질려서 슬쩍 피한 것이다. 신부는 그제야 잡았던 손을 놓고 뒹굴듯이 땅에 떨어졌다. 신부는 정신을 가다듬고 신랑 옆으로 기어왔다. 신랑은 숨이 끊어진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만 가슴에 온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죽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신부는 힘을 내어 주변을 살펴보았다. 마침 저 계곡 아래 등불이 하나 깜박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 저기 사람 사는 집이 있구나!” 신부는 온몸의 상처는 생각지 않고 비탈 아래로 미끄러지듯이 달려 내려갔다.

그러자 그곳에는 정말 외딴 집이 하나 있었다. 신부는 우선 눈에 띄는 방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방안에는 잔칫상이 벌어져 있고 대여섯의 청년들이 둘러앉아 한창 흥이 올라 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화장이 짙은 얼굴에는 머리카락이 마구 감기고, 그 밑으로 시뻘건 피가 흐르는 피투성이의 신부가 별안간 뛰어들자 청년들은 기겁을 하더니 꿇어앉아 수도 없이 절을 하며 빌고 또 빌었다.

“제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아마도 청년들은 아닌 밤중에 귀신이 뛰어든 것으로 착각을 한 모양이었다. 신부는 “뒷산 비탈에 사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발 부탁이오니 어서 가서 구해주십시오!” 이 말을 마친 신부는 그 자리에 그만 픽 쓰러져 기절을 하고 말았다. 그러자 삽시간에 큰 소동이 일어났다.

까닭을 안 청년들은 횃불을 들고 산으로 올라갔고, 기절한 신부는 방안에 눕혀 간호를 했다. 청년들이 신랑을 업고 내려오자 바깥채에 있던 그 집의 주인은 기절할 듯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이건 내 아들이 아니더냐!” 그 집 주인은 그 날 신랑을 신부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와서 이웃사람들에게 술대접을 하던 참이었던 것이다.

다시 깨어난 신랑과 신부의 말을 들은 식구들은 새삼 놀라웠다. 게다가 호랑이가 공교롭게도 신랑 집 뒷산에까지 온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그리고 더욱 탄복할 일은, 자신의 몸은 생각지도 않은 채 신랑을 구해낸 신부의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고을의 원님은 신부를 크게 칭찬하고 열녀문을 세워주었고, 신랑집에서는 또 한번의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고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