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프린트하기

천옛날에 어머니와 아들이 살았다. 아들은 나무를 하러 매일 산으로 갔는데, 그의 어머니는 밥은 많이 싸고 고추장은 조금만 싸줬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고추장을 좀 더 많이 싸달라고 하니 정말로 고추장을 많이 싸주었다. 점심때가 되어 밥을 다 먹고 보니 고추장이 많이 남아 있었다.

남은 고추장을 무엇에 쓰나 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마침 옆에 해골이 하나 있었다. 남은 고추장을 해골에다 빨갛게 칠하고서 가려는데, 갑자기 해골이 “이리 오너라” 했다. 하도 이상해 그 뒤를 따라갔더니 해골은 간 곳이 없고 큰 기와집이 한 채 있었다. 그때 별안간 비가 와 나무꾼은 할 수 없이 그 기와집 속으로 들어갔다.

그랬더니 그 속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파가 나와 하는 말이, “아, 지금 오나? 오래 기다렸네. 자네가 꼭 올 줄 알았네” 했다. 그리고 부엌에 가더니 밥과 고추장을 가져다주며 먹으라고 했다. 밥을 고추장에 비벼 먹었다. 그랬더니 노인이 옛날 얘기를 해달라고 졸라서 처음에는 없다고 하다가 오늘 당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니까 노파는 “응, 그래?” 하고는 별안간 재주를 세 번 넘더니 여우로 변해 나무꾼을 잡아먹었다. 노파는 천년 묵은 여우였던 것이다.

다음은 오래 묵은 짐승 이야기. 여우 이야기와는 달리 한 사람이 당나귀, 개, 닭들을 키웠다. 10년 가까이나. 그런데 어느 날 주인이 자고나서 마구간으로 가보니 당나귀가 땀을 주르륵 흘리고 있었다. 그 이튿날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상히 여긴 주인영감이 다음날 저녁에는 마구간 구석에서 거적을 쓰고 앉아 엿보고 있었다. 밤이 길어지자 닭이 세 번 울었다. 그러고 난 다음 세 번 재주를 넘더니 훤칠한 선비가 되었다.

그 선비가 말을 끄는 시종을 나오라고 하자, 개가 나와 세 번 재주를 넘더니 사람으로 변해 나귀를 끌고 나와 선비를 태우곤 어디론가 갔다.

그래서 주인이 따라가 보았더니 자꾸 산중으로만 들어갔다. 그러더니 큰 바위 옆으로 갔다. 그곳에는 커다란 지네의 굴이 하나 있었다. 선비가 지네보고 하는 말이, 우리는 언제나 죽어 환생을 하느냐고 물었다.

지네가 말하길, “내가 가서 그 집안을 몰살시켜야만 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 집에 10년 묵은 기름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것이 지네의 몸에 닿기만 하면 죽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 짐승들은 절대 그런 것은 없다고 완강히 부인하며 꼭 와달라고 했다.

그러자 지네는 “그럼 사흘 후 밤이 깊어서 담을 넘어가겠다”고 했다. 주인영감이 밥도 안 먹고 근심에 싸인 것을 본 며느리가 그 연유를 물었다.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자, 며느리는 10년 묵은 기름이 있다고 하였다.

며느리가 시집올 때 가져 온 머릿기름을 바르지 않고 놔두었다고 하여, 그걸 골고루 뿌려두었다. 지네가 온다는 날은 온 식구가 안방에 모여 떨고만 있는데, 바람소리가 쏴 하더니 별안간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온 식구가 무서워 꼭 붙잡고 밤을 새웠다. 이튿날 나가보니 커다란 지네가 죽어 있는데, 다리에 기름이 닿아서 오그라져 있었다. 그래서 그 길로 닭, 개, 당나귀와 잘 살았다고 한다.

##호랑이 이야기 신령스럽거나 혹은 바보스럽거나

동네 아낙네들이 깊은 산골짜기로 산나물을 캐러 갔다. 나물을 캐다 보니 귀엽게 생긴 고양이 같은 게 올망졸망 놀고 있었다. 노는 모양이 귀여워 한 아낙네가 “그놈 데려가 길렀으면 꼭 좋겠다” 하니까 그 산꼭대기에 있던 어미 호랑이가 “흐흐음…” 하고 좋아하였다. 조금 있다 걸걸스럽게 생긴 아낙이 “고놈, 몽둥이로 톡 때려 죽였으면 좋겠다”고 말하니까 호랑이가 “으흐응!”하며 막 쫓아왔다.

나물 캐던 아낙들은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칼이며 바구니를 다 내버리고 도망을 왔다. 그 이튿날 일어나 보니 데려다 길렀으면 하던 아낙네 집엔 바구니와 앞치마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리고 때려 죽였으면 좋겠다던 아낙네의 집엔 바구니와 앞치마를 갈기갈기 찢어다가 갖다놓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짐승에게라도 함부로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며, 호랑이가 아니라 산신령님일 것이라고 누구나 말했다 한다.

한데, 산중에 사는 늙은 호랑이가 오랫동안 먹지 못하여 시장기를 면하려고 밤에 마을로 내려왔다. 하지만 그 마을에는 개를 기르는 집도 없었다. 그래서 어린아이를 잡아먹으려고 어느 집 안으로 들어갔다. 창문 아래 숨어서 방 안을 엿보고 있으려니 마침 방안에서 어린아이가 심히 울고 있었다. 아이 어머니는 “에비, 호랑이 온다” 하고 말했으나 아이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호랑이는 이 말에 깜짝 놀랐다.

아이 어머니가 호랑이 온 것을 알고 말하는 것 같았다. 호랑이는 숨을 죽이고 창밑에 쭈그리고 있었다. 아이 어머니는 “옛다, 곶감이다” 하니 아이의 울음소리는 뚝 그쳤다. 호랑이는 아이가 호랑이 왔다고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않더니 곶감이라고 하니 그치는 것으로 보아 아마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나보다 싶어서 방에 있는 아이를 잡아먹을 것을 단념했다.

호랑이는 외양간에 가서 소를 잡아먹기로 했다. 그때 외양간에는 마침 소도둑이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어둠속에서 호랑이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하고 소인 줄 잘못 알아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발로 엉덩이를 차면서 밖으로 나가기를 재촉했다. 호랑이는 어둠 속에서 갑자기 등에 무엇이 올라타고 엉덩이를 차는 것으로 보아 사람이면 감히 이런 짓을 할 수 없으니 필경 곶감일 것이라 싶어 뛰어 달아났다.

등에 탄 소도둑은 호랑이가 뛰는 바람에 떨어질까봐 호랑이의 두 귀를 꼭 잡고 그만 멈추라고 소리쳤으나 그럴수록 호랑이는 더 뛰었다. 얼마나 뛰었는지 동쪽 하늘이 환히 밝기 시작했다. 소도둑이 가만히 살펴보니 소가 아니라 호랑이이므로 이거 안 되겠다고 뒤로 뛰어내렸다. 곶감을 모르는 호랑이는 호랑이대로 이제 곶감도 떨어졌으니 살았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깊은 산속으로 도망쳤다. 소도둑놈은 이후 죽은 목숨이 살았다고 크게 뉘우치고 열심히 살았다고 한다.

/고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