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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대기 중의 수증기가 찬 기운 때문에 얼어서 땅으로 떨어지는 얼음 결정’들이다. 이런 눈이 만들어지려면 온도가 0℃ 이하로 낮아져야 한다. 그러나 날씨만 춥다고 되는것은 아니다.

하늘에 떠 있는 작은 물방울, 즉 수증기는 0℃ 이하에도 얼지 않는 ‘과냉각 상태’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과냉각’이란 온도가 급변할 때 물질의 원자가 안정상태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이 과냉각된 수증기는 어떤 자극을 받으면 순식간에 얼어붙은 성질을 갖는다. 공기 중의 먼지는 중요한 자극원이 된다. 과냉각된 수증기에 먼지가 달라붙으면 바로 얼게된다.

일종의 ‘씨앗’이 되는 것이다. 주변의 수증기들이 이 얼음 씨앗에 달라붙으면 눈이 된다.

그러다 무거워져 땅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때 만약 지상의 기온이 높으면 지상 가까이 내려온 눈은 비가 되어 내리게 된다. 눈의 결정 모양은 그 종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그런데 다양한 눈 결정 모양들 속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모두 육각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육각형은 물 구조 때문이다. 눈은 물이 변해서 된 것이다. 물은 산소원자 1개와 수소원자 2개가 결합되어 있는 구조다.

물 분자는 6개가 모여 하나의 고리를 형성하는 특징이 있다. 그런데 보통 우리가 보는 눈은 하얀 덩어리의 모습이다.

이렇게 눈이 하얀 덩어리로 보이는 이유는 눈 결정이 서로 달라붙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모양이 평평하지 않고 복잡해서 빛을 이리저리 반사시키기 때문. 투명한 유리를 부수어 놓으면 하얗게 보이는 이유와 같다.

그런데 우리가 눈싸움을 하거나 눈사람을 만들고 싶어서 눈을 뭉쳐보면 때로는 잘 뭉쳐지기도 하고, 때로는 푸석거릴 때가 있다. 그것은 온도에 따라 눈의 종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데 이런 눈이 많이 내리면 죽음과 직결되는 공포의 대상이다.

개척시대의 미국에서 대설이 내리면 교통이 두절되어 굶어죽는 사태가 비일비재하였다. 수년 전 겨우 댓 시간 뉴욕에 내린 대설로 사흘이나 교통이 마비되어 약탈소동이 벌어졌던 일도 있었다.

한국도 대설로 집이 무너지고 하우스가 무너져 사람과 가축이 죽고 길이 막혀 군 장병들까지 나와 구조한 일이 있는데, 아이오와에서 <신세계교향곡>을 작곡하고 있던 드보르작도 하루에 감자 하나씩 먹어가며 폭설로 막힌 길을 뚫어낸 고충을 적어 남기고 있다.

그래선지 구미의 작품 속에 나오는 눈의 이미지는 거의가 죽음이나 공포나 불감증, 그리고 보이는 것마다 일색이라서 맹목(盲目)을 상징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 한국인의 눈 이미지는 대체로 긍정적인 편이다.

눈… 하면 소년시절에 보았던 장 드라노아가 감독한 <전원교향악>의 한 장면이 되살아난다. 눈 먼 소녀로 나오는 미셀모르강이 눈수술에 성공하고 처음 외계(外界)에 접한 것이 걷잡을 수 없이 퍼부어대는 함박눈이었다. 그 눈을 보고 놀라는 미셀의 눈이 그토록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눈을 보고 청순 이미지가 물씬했던 것은 한국사람이기 때문이요, 실은 그 영화장면은 맹목(盲目)을 상징하는 눈(雪)으로, 눈 먼 소녀에게 닥쳐올 암담한 미래를 상징한 장면이라 한다. 구미에서 눈만 내리면 열심히 쓸어내는 것은 쓸어내지 않으면 닥쳐올 공포의 잠재의식 때문이라고도 한다.

미국 지방 도시에서는 자기집 앞 눈을 쓸지 않음으로써 시청의 청소부가 쓸게 되면 눈 쓴 값으로 10불의 청구서를 받게된다.

그러기에 노부부만 사는 집에서는 아예 아르바이트 학생과 눈 쓸 계약을 맺어놓는다. 한 번 쓰는데 5불 안팎이기에 과태료보다 싸다. 그렇게 쓸어놓으면 시청 제설차가 냉큼 실어간다. 이에 비하면 우리 한국처럼 눈 쓰는데 등한하고 둔감한 민족은 없는 것 같다.

눈은 풍년을 약속해주는 서설이라는 농경민족의 전통적 관념때문인지, 또는 “낙화인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삼하리요”하고 읊었듯 설화도 꽃이 아니랴…는 심미감 때문인지, 또는 죽음과 직결될 만큼 큰 눈이 없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길의 눈을 쓸지 않음으로써 출근시간이 늦어지면 서울에서만 시간당 60억원이 손해 나고 또 헛바퀴 도는데 낭비되는 기름값, 눈 녹이는 데 드는 소금값, 급증하는 충돌사고, 낙상사고를 합치면 무려 120억원의 돈이 넘게 날아간다 한다.

내집 앞은 내가 쓰는 제설의 생활화가 시급히 이루어져야만 할 것 같다.

고운석<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