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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교사가 제자의 일기장을 검사했다면 그것이 과연 인권침해냐 아니냐?’ 에서부터 ‘마을 곳곳에 설치된 CCTV, 치안의 일등공신인가 인권침해인가?’ 까지 요즘같이 사회 곳곳에서 인권이 화두가 된 적이 없었다. 그만큼 인권의 중요성은 상식처럼 됐다.

가끔은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의 인권을 둘러싼 논란으로 사건의 전말이 뒤바뀌는 일까지 생기곤 한다. 피의자가 조사를 받던 도중 조금이라도 인권침해를 받은 경우가 있다치면 사건 자체보다 인권침해 논란이 더 중요한 이슈가 되기 때문이다. 범죄사실 유무를 명확히 밝혀 법적 절차를 밟아나가야 하는 검찰로서는 갈수록 고도의 인권 의식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인권교육 받으러 갑니다"

지난 3월 서울중앙지검 3차장 산하 검사와 직원 300여 명이 한꺼번에 어디론가 향했다. 서울중앙지검 3차장 팀은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을 비롯, 거물 브로커 윤상림 사건,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증여 등 모두가 기억하는 굵직한 사건들의 수사를 맡아 왔다. 한국 사회를 떠들석하게 한 대형 사건들의 범죄사실을 밝혀낸 사람들이 바로 3차장 산하 팀인 셈이다.

이들이 찾은 곳은 다름 아닌 인권교육 현장. 그것도 스스로 강사를 초청하고 인권교육을 받겠다고 나선 것이다. 예전의 검찰를 생각하면 쉽지 않은 일이다. 한때 권력으로만 인식되던 검찰과 법무부가 국민들의 달라진 인권의식에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스스로 몸을 낮추고 나선 것이다.

또 지난 4월에는 광주지방검찰청 소속 검사 10명이 수의로 갈아입고 '1일 교도소 체험'에 나섰다. 이들은 미결수로 입소해 몸수색을 받고 수의를 입은 뒤 사동에서 밥을 먹고 징벌방에도 들어가는 등 재소자들의 생활을 그대로 경험했다.

체험행사를 통하여 검사들은 피의자가 구속될 겨우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심리 상태에 있는 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또한 이러한 체험이 수사과정에서 인권을 존중과 효율적인 업무처리에 도움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여하튼 지금 검찰과 법무부는 바람직한 변화를 겪고 있다.

법무부는 인간존중을 실현하는 법무행정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9급 신규자 과정에서부터 전 직급에 걸쳐 1주일 이상 모든 교육 과정에 인권교육을 법무연수원에서 의무화하고 있다. 민변과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파견된 전문가가 ‘수사와 인권’ 등 분야별 인권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또 연내에 검사장 이상 고위 간부들을 대상으로 이론이 아닌 체험 위주의 인권교육을 실시하는 '고위정책과정'이 신설된다.

사실 법무부의 ‘인권 강화’ 노력은 이미 수 년전에 시작됐다. 법무부는 인권개선 활동을 종합해 국민에게 직접 전달하는 '인권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고, 또 일반 국민들이 언제든지 접속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인권침해 신고센터’가 최근 법무부 홈페이지에 개설됐다.

요즘 검사들이 혹시 인권을 너무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에 수사의 차질을 겪거나 불만이 없지 않을까 궁금할 수 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검사들은 스스로 인권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되돌릴 수 없는 시대의 흐름임을 인식하고 있다.

인권 교육에 참가한 한 검사는 “검사들이 이제는 범죄 소탕 뿐 아니라 특수, 마약 등 다양한 분야의 사건수사과정에서 혹시 인권 침해 소지가 없는지, 현재의 수사 방법이 인권보호 차원에서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검사들 대상으로 인권관련 강의를 했던 박원순 변호사는 이제 우리사회도 법무부와 검찰의 인권 개선 노력을 어느 정도 따뜻한 시각으로 봐 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검찰 스스로 인권교육을 하겠다고 나선 것은 상당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며 "검사들이 인권침해를 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검사들이 나쁜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범죄 수사 과정에서 벌어지는 그야말로 얘기치 못한 상황이라는 것을 국민들도 이해해 줬으면 합니다”고 했다.

아동 성폭행 피해자 부모인 장 모(40)씨는 아직도 6개월 전 딸아이에게 일어났던 끔찍한 사건을 잊지 못하고 있다. 당시 놀이방에서 성폭행을 당했던 장씨의 딸 소연이는 언어장애와 함께 극심한 불안 증세를 보였다. 범죄수사보다 딸 아이 치료에 급급했던 장씨는 자신의 딸을 그 지경으로 몰아넣었던 성폭행범을 처벌하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연이뿐 아니라 여러 아이들이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신고를 하게 됐고 수사는 경찰을 넘어 검찰로까지 이어졌다.

“무서웠죠. 검찰이나 법정이니 하는 데는 어른인 저도 낯설고 무섭잖아요. 근데 검사님이 참 편하게 해주셨어요. 수사가 몇 달씩 진행되는 동안 소연이 치료에도 도움을 주셨구요, 소연이는 나중에 검사님을 삼촌으로 생각할 정도였어요.”

“너무 고맙죠. 아이들에게 피해자 조사를 할 때면 제가 봐도 답답하고 힘이 드는데요. 하지만 검사님은 얼굴 한 번 찡그리시지 않았어요. 애들이 검사님을 좋아하게 되면서 저한테도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말하더라구요.”수사과정을 지켜본 장 씨의 소감이다.

법무부의 변화전략 계획이란 바로 이런 장 씨와 같은 소감이 사회 곳곳에서 이어져 나오게 하는 것이다.